스노든 ‘미, 38개국 도청’ 폭로 파문
자국민 사생활 침해 넘어
우방국 도청으로 문제 확산
공격받던 중국도 “미, 위선적”
오바마 행정부 궁지에 몰려
자국민 사생활 침해 넘어
우방국 도청으로 문제 확산
공격받던 중국도 “미, 위선적”
오바마 행정부 궁지에 몰려
미국 정보기관이 전세계에서 정보 수집을 위해 도·감청 활동을 하고 특히 자국 내 38개국 외교공관들까지 대상으로 삼았다는 폭로가 나오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집권 2기 시작 반년을 맞이하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 파문으로 미국 안에서보다는 대외정책에서 큰 난관에 부닥칠 조짐이다. 미국 안에서는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내세워 감청한 데 대해 미국민의 절반가량이 찬성의 뜻을 밝히는 등 급격한 민심 이반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6월 중순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실태를 폭로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전선은 제한적이었다. 미국민에 대한 사생활 침해와 중국에 대한 해킹 문제가 주요 이슈였다. 그러나 스노든이 에콰도르 망명을 희망하며 러시아로 이동하자 전선이 러시아와 에콰도르로 넓어졌고, 이어 독일 <슈피겔>과 영국 <가디언>의 추가 폭로로 유럽 나라들과 한국·일본 등 우방국에 대한 도·감청 스캔들로 번지는 형국이다.
이번 사태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이미 수세에 빠졌다. 오바마 행정부는 6월 초까지만 해도 미국 안보·경제시설에 대한 중국의 해킹을 문제 삼으며 중국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미국도 중국 시설에 대한 광범위한 해킹을 한 것으로 드러나자, 비판은 꼬리를 감췄다. 중국 국방부가 6월27일 브리핑에서 “미국의 위선적 언행이 드러났다”며 오히려 ‘미국 때리기’에 나서는 양상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꼬이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 해결, 핵무기 감축과 관련한 미국의 제안을 거부한 데 이어, 스노든의 신병 처리를 놓고 미국의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38개국 외교공관들에 대한 도·감청 실태 폭로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 추진 동력을 크게 떨어뜨릴 ‘폭발력’을 품고 있다.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한국·일본·멕시코·터키·인도 등 대상국들이 모두 미국이 지역 현안을 푸는 데 도움을 받아야 할 핵심 우방국들인 탓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동안 대화와 협력, 다자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조지 부시 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로 추락한 미국의 위신을 어느 정도 만회하는 듯했으나, 이번 사태로 그런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유럽 나라들의 대응이 심상치 않다. 유럽 민간인들에 대한 불법 사찰 실태가 워낙 광범위한 탓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6월30일(현지시각) 미 국가안보국 기밀문서를 근거로 “미국이 독일에서만 한달에 5억건의 전화, 전자우편, 문자메시지를 감시했다”며 “보통 하루에 2000만건의 전화와 1000만건의 온라인 활동 관련 정보가 수집됐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과 독일·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곧바로 미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비네 로이트호이서슈나렌베르거 독일 법무장관은 “냉전 시기에 적들이 사용한 수법이 연상된다”고 비난했다. 독일 연방 검찰은 미 정보기관을 상대로 기소 준비를 하고 있으며, 독일 시민사회가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분위기는 오바마 행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온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난기류에 빠뜨릴 수 있다. 도청을 통해 유럽연합의 협상 전략이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이 협상은 지난달 시작됐으며, 내년 말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가들은 이름만 거론됐고, 어떤 방식으로 도·감청을 당했는지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추가적인 내용들이 나올 경우 이들 나라의 대응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당국은 이번 사태가 외교 문제로 비화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이 의혹에 대한) 답을 갖게 된다면 동맹들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며 “모든 관련정보를 유럽연합 국가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정세라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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