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5주년 대국민 연설
총격사건 묻혀 관심 못끌어
총격사건 묻혀 관심 못끌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도 ‘악재 국면’ 탈출에 실패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가 한고비를 넘기면서, 금융위기 5주년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내 현안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연설 시작 직전 백악관 5㎞ 밖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졌다. 그가 연설에서 사용한 3800개의 단어는 언론과 대중의 무관심 속에 허공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해군복합단지 총기 사건으로 인해 45분 미뤄졌으며, 내용도 수정해야 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로 진흙탕이 됐던 뉴스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악재에 휘말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재선에 성공했다. 취임식도 하기 전인 12월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재선 대통령은 다른 정책들을 제쳐둔 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총기규제 입법을 밀어붙이도록 등 떠밀렸다. 이후 오바마 2기를 수렁에 빠뜨린 대형 악재 리스트는 ‘뷔페’ 수준이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보수단체 표적 세무조사, <에이피>(AP) 통신 통화기록 압수,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 등 악재에 휘둘리느라 예산 증액과 이민개혁 등 국내 현안은 뒤로 밀렸다. 이집트 쿠데타와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는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을 키우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금융위기 5주년 연설을 통해 이런 국면을 타개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9·11 테러 이래 최악의 인명 피해 사건이 터졌다. ‘대통령 연설’이 ‘워싱턴 시장’의 생방송 뉴스 브리핑에 밀렸다. 케이블 뉴스들은 대통령 연설을 황급히 자르고 총기난사 속보로 장면을 전환했다.
“우리는 몇명이 총에 맞았고 일부가 숨졌다는 것을 압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급히 수정한 연설문을 발표하는 동안, 객석에 있던 소상공인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백악관은 경제정책이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소상공인들을 초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승자독식 양상이 악화됐다. 이야말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라고 예정된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고대했던 ‘초점 전환’은 이미 물건너간 뒤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