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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로메로 주교 인권센터’ 폐쇄 반발 확산

등록 2013-10-13 20:26수정 2013-10-13 22:45

엘살바도르 내전 피해자 보루 역할
재개된 ‘시민 800명 학살’ 재판에
‘증거 제공 사전 차단’ 의혹 일어
1978년의 일이다. 엘살바도르 시골마을 산비센테의 23살 청년 지도자 네리스 곤살레스는 한 주에 한 번씩 25㎞를 걸어 이웃마을에 갔다. 해방신학자인 오스카르 아르눌프 로메로 대주교가 1977년 세운 ‘수코로 주리디코’(법률 구조)에 전화를 걸기 위해서다. 곤살레스는 주민들이 살해·실종된 사건 현황을 매주 전화로 업데이트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조짐이 나타나 1981년 본격화한 좌-우 내전으로 1992년까지 8만여명이 죽고 8000여명이 실종됐다. 로메로 주교도 1980년 3월 설교를 하다 괴한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가 세운 조직은 1982년 ‘투텔라 리걸’(법률 후견)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내전 피해자들의 최후의 보루 노릇을 해왔다. 이 기구가 지금껏 기록한 사건이 5만건을 넘는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엘살바도르의 대주교인 호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알라스가 투텔라 리걸의 폐쇄를 명령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12일 이에 대한 엘살바도르 시민사회와 국제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전했다. 가톨릭 내 보수 세력의 조직인 ‘오푸스데이’ 구성원으로 알려진 대주교는 성명을 통해 “(투텔라 리걸은) 더는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틀 뒤에는 “구조조정과 현대화의 정상적인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폐쇄 시점에 의혹을 제기한다. 1993년 군부와 결탁한 민족공화동맹(ARENA) 정부는 내전 기간 모든 인권 범죄를 덮는 사면법을 승인했다. 정부 쪽 암살단과 불법 무장단체 및 보안군, 좌파 게릴라 민족해방전선(FMLN)에 인권 범죄의 책임을 묻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미국 등 아메리카 대륙 35개국이 가입한 ‘미주기구’(OAS) 산하 기구인 미주인권위원회가 2012년 이 법을 불법이라고 결정했다. 엘살바도르 법무부는 1981년 시민 800여명이 숨진 ‘엘모조테 대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재개했고, 대법원은 이달 초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내전 시기 인권 범죄 처벌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투텔라 리걸의 기록들이 재판의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정의와 책임 센터’ 법률고문 패티 블룸은 <알자지라>에 “이 시점에서 투텔라 리걸을 해체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사면법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가장 적절한 도구”라던 엘살바도르 대주교의 이전 발언도 의혹을 부채질한다. 그는 가톨릭의 현대화를 폐쇄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투텔라 리걸은 엘살바도르 전역에서 교육·인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과거사 청산을 뛰어넘는 왕성한 활동으로 이미 ‘가톨릭 현대화’의 상징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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