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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달팽이 공동체’로…총 놓고 ‘자치’ 택한 사파티스타

등록 2014-01-02 19:54수정 2014-01-03 08:54

알자지라, 출범 20돌 근황 전해
1996년 정부와 평화협정 맺은뒤
치아파스주 5개 지역 독립 자치

모든 주민 돌아가며 의회 참석
가난해도 교육·의료 걱정 덜어
“새 사회구조 만든 21세기 혁명”
* 사파티스타 : 멕시코 민족해방군

20년 전 1월1일, 멕시코에선 세계사에 기록될 두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하나는 캐나다·미국·멕시코 사이에 관세를 철폐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이 발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멕시코 남부 산간지역 치아파스주를 거점으로 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결성이다. 나프타가 1990년대 ‘자본의 세계화’ 흐름에서 꼭짓점에 해당한다면, 소수민족 마야인들과 가난한 농민을 대변하는 사파티스타는 이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파티스타는 1994년 1월1일부터 12일간 무장투쟁을 벌였다. 수십명의 희생자를 낳고 밀림 지역으로 숨어들었다. 규모만 따지면 ‘사소한 소동’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상과 용기에 밑받침된 ‘총이 아닌 호소와 설득’을 앞세운 저항이, 실존사회주의권의 몰락에 좌절하고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공세에 속수무책이던 세계 진보 진영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알자지라>는 1일 사파티스타 출범 20돌을 맞아 사파티스타의 핵심 근거지인 치아파스를 취재한 르포를 실었다. 사파티스타는 1996년 멕시코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갈등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사파티스타는 치아파스주의 5개 지역에서 자치를 실행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인들과 언론을 경계한다. 그러나 사파티스타의 이념에 동의하는 지지자들과 여행자의 방문은 허락한다. 이들의 마을은 자체 경찰력을 갖추고 외부에 문을 닫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살아 ‘카라콜레스’(달팽이라는 뜻)라고 불린다. 이들이 가장 존경하는 세명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마르코스 부사령관, 에밀리오 사파타가 그려진 벽화로 마을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에밀리오 사파타는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영웅이며 사파티스타는 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나의 말이 나의 무기”(<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한글판이 출간됐다)라고 천명한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멕시코 밀림 소수민족의 작은 목소리를 세계 구석구석까지 전하는 방식으로 국제 연대를 이끌었다. 검은 스키 마스크와 낡은 군모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문 독특한 스타일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가면을 언제 벗을 것이냐는 질문에 “멕시코가 가면을 벗는 날”이라고 답한 바 있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2006년 검은 오토바이를 타고 멕시코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한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파티스타의 사령관이 누구인지는 아직껏 알려지지 않았는데, 아마도 치아파스 원주민 모두일 것이다.

치아파스주는 멕시코에서도 가장 고립되고 가장 가난하며 소수민족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래도 사파티스타는 정부의 지원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과 지지자들의 도움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정 탓에 궁핍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알자지라>는 콩과 옥수수 전병(또띠야)만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파티스타는 “민중이 질서를 만들고 정부는 이에 따른다”는 이념을 실천하고 있다. 5개 지역마다 있는 ‘의회’에는 모든 주민들이 2주마다 돌아가며 참여한다. 교통이 불편하고 소득 수준이 낮은데도 다른 주보다 진료소를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멕시코 공식 언어인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고유 언어인 ‘초칠’로 공부한다. 강제결혼·차별·폭력에서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도 잘 정비돼 있다. <알자지라>는 사파티스타는 기존 정부의 전복과 권력 장악이라는 20세기식 혁명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정치 질서를 새로 세우는 운동이라고 평했다. 치아파스를 방문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활동가인 레베카 만스키는 <알자지라>에 “이곳에 오자마자 나는 오큐파이의 이념·조직원리·언어가 사파티스타의 철학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파티스타 자치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지는 공식 통계가 없다. 2012년 4만여명이 검은 스키 마스크를 쓰고 침묵의 행진을 벌인 사례를 근거로 규모를 짐작해볼 순 있다. 하지만 멕시코 전역에서 벌어지는 이농의 물결을 사파티스타도 완전히 피해갈 순 없었던 것 같다. <알자지라>는 치아파스주에서 멕시코의 대도시나 미국 등으로 이주한 사람이 약 85만명인데 이중엔 사파티스타 자치지역에서 온 이들도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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