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실업수당 연장 등 추진에
교황 ‘도덕적 권위’ 적극활용 나서
공화당 일부도 “교황의 지적 맞다”
교황 ‘도덕적 권위’ 적극활용 나서
공화당 일부도 “교황의 지적 맞다”
미국 상원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연말 의회 휴회 직전에 새해 의제를 논의하는 비공개 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소득 불평등 문제를 다루자고 강하게 권했다. 그러자 버나드 샌더스 의원이 “이 문제에서 우리 편에는 강력한 협력자가 있다. 바로 교황이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유대교인인 샌더스 의원이 모르몬교도인 리드 대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가톨릭교도 의원들은 크게 기뻐했다. 가톨릭교도인 리처드 더빈 의원은 ‘샌더스 의원이 나의 교황을 인용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뉴욕 타임스>는 6일(현지시각)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경제정의를 세우자고 세계에 설파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정치권의 정책 논쟁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풀이했다.
특히 민주당 쪽은 실업수당 연장과 최저임금 인상 같은 현안들을 추진하려고 교황의 도덕적 권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소득 불평등 문제를 얘기하며 지난해 11월 발표된 교황의 권고문(‘복음의 기쁨’)에서 “어떻게 노숙자가 죽어가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고 주가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게 뉴스가 될 수 있는가?”라는 대목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무상 식권)와 실업수당을 삭감한 공화당 쪽은 빈민층에 무관심하다는 인식을 떨쳐내려고 애쓰고 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해를 강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화당을 불편하게 하는 게 분명하지만, 일부 가톨릭교도 공화당 의원들은 교황의 발언을 적극 받아들이기도 한다. 지난해 대선에서 밋 롬니 대선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 하원의원은 “교황이 빈곤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켰다”고 치켜세웠다. <시엔엔>(CNN)에서 ‘크로스파이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뉴트 깅그리치 전 공화당 하원의장은 “모든 공화당원들은 억만장자 갑부들과 굶주리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교황의 지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정계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막강한데다 가톨릭 신자가 전체 유권자의 24%에 이르는 등 종교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히 크다. 1972년 이후 미국 대선에서 가톨릭 유권자의 표를 얻지 못하고 대통령이 된 후보는 200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유일하다. 2012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가톨릭 유권자의 50% 지지를 얻은 바 있다. <뉴욕 타임스>는 교황의 진보적 성향은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부 의원들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교황을 언급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전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