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개주 중 처음…연방정부는 ‘일본해’
하원 표결 앞둬 일본 로비 거세질듯
하원 표결 앞둬 일본 로비 거세질듯
미국 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동시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이 주 상원을 통과했다.
버지니아주 상원은 23일(현지시각) 주도인 리치먼드의 의사당에서 본회의를 열어 데이브 마스덴(민주) 상원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을 찬성 31표, 반대 4, 기권 3표로 가결 처리했다.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주 의회 표결을 통과한 것은 버지니아가 처음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현재 동해 대신 일본해라는 단일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법안이 발효하기까지는 하원 통과와 주지사 서명이라는 관문을 남겨놓고 있는데, 앞으로 최종 통과될 경우 다른 지자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번 법안 통과는 일본 정부의 집요한 방해 작업을 뚫고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대형 로펌을 로비단체로 고용한 데 있어,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가 22일 버지니아주의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와 윌리엄 호웰 주하원의장을 만나 이 법안을 부결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도널드 매키친 의원이 이날 본회의에서 갑작스럽게 동해 병기 법안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표결에 앞서 찬반토론에서 반대 발언을 한 의원은 매키친 의원 한명뿐이었는데, 그는 “일본해 단일 표기가 미국 정부의 입장인 만큼 병기 법안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마스덴 의원과 리처드 블랙(공화) 의원 등 4명이 잇따라 찬성 발언을 했다. 마스덴 의원은 “일본해라는 이름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논란이 되는 명칭을 제대로 가르치자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블랙 의원은 “일본해라는 이름은 1929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한국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이번 법안 통과는 이 지역 재미동포들이 지역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한 지난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에 더욱 값지다. 이번 법안 통과를 주도한 사단법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의 피터 김 회장은 “2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동해를 어떻게 부르느냐고 물으니 ‘일본해’라고 답해 충격을 받았다. 아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내가 무슨 잘못이냐고 했다”며 “그때부터 한인들을 끌어모아 의원들 설득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장에 나온 70여명의 재미동포들은 법안이 통과하는 순간 서로 손을 맞잡거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한복 차림으로 나온 고한식(82)씨는 “평생의 한을 푼 듯한 느낌”이라며 연신 박수를 쳤다. 이선표 리치먼드한인회 이사장은 “이런 일로 여러 사람이 단합해서 고치게 되니 더욱 좋다”며 “다른 주들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리치먼드(버지니아주)/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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