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트리마르코의 모정
섹스산업 마피아에 항소심 승리
살해 협박 불구 “정의 실현” 감격
2002년 실종된 외동딸 베론 추적
성노예 6천여명 구출해 재활 앞장
섹스산업 마피아에 항소심 승리
살해 협박 불구 “정의 실현” 감격
2002년 실종된 외동딸 베론 추적
성노예 6천여명 구출해 재활 앞장
집이 불탔다. 숱한 살해 협박도 받았다. 실제 두 차례나 암살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성매매 마피아에 납치된 딸을 찾는 애끊는 모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투사가 된 어머니는 딸이 실종된 지 12년 만에 성매매 마피아와 경찰 등 10명을 법정에 세워 10~22년형의 선고를 이끌어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수사나 트리마르코(60)는 8일 아르헨티나 북서부 투쿠만주 법정을 나서며 말했다. “정의가 실현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내 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는 날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베론. ‘마리타’란 애칭으로 불리던 꽃 같은 딸은 23살이던 2002년 4월3일 길거리에서 납치돼 지금껏 실종 상태다. 트리마르코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고 고통에 찬 세월을 보냈고 당시 두살이던 어여쁜 손녀 미카엘라는 엄마없는 아이로 자랐다. 트리마르코의 남편은 2010년 깊은 한을 안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트리마르코는 딸 마리타를 찾는 과정에서 납치와 인신매매를 일삼는 섹스산업의 마피아는 물론 이들을 비호하는 부패한 권력과 이중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아르헨티나는 성매매가 합법인데, 여성을 납치해 성매매를 강요하는 범죄가 만연해 있다.
트리마르코의 딸도 이런 인신매매와 섹스산업의 희생자였다. 10여년 전 병원 예약 시간에 맞춰 투쿠만시의 집을 나선 마리타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빨간색 차량에서 내린 남성 3명이 마리타를 강제로 차에 밀어넣었다고 했다. 딸은 실종 사흘 만에 집에서 30㎞가량 떨어진 지역에서 섹스파티에서 탈출한 듯한 모습으로 경찰에 발견됐다. 경찰은 그를 투쿠만행 버스에 실어 돌려보냈다고 주장했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았다. 트리마르코는 경찰서에 사건 보고서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은폐하기에 급급했다.
결국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딸을 찾아 나섰다. 성매매 여성한테 딸 마리타가 인신매매 조직에 넘어갔다는 정보를 들은 뒤 딸의 행방을 찾아 전국의 사창가를 뒤지고 다녔다. 트리마르코는 때론 성매매 여성처럼 차려입고, 때론 포주처럼 굴면서, 딸의 소식을 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딸은 아르헨티나 라리오하나 북부 스페인에 팔려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트리마르코는 자신의 딸을 찾아다니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성매매 여성들과 인신매매 조직에 접근해 얻은 정보를 경찰에 넘겨 수많은 여성들을 구해냈다. 또 2007년에는 딸의 이름을 딴 ‘마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재단’을 세워 인신매매 희생자를 구출해 법적·정신적·사회적 지원을 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노력으로 적어도 6000여명의 젊은 여성이 강제 성매매에서 구조된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이런 노력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2008년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법을 처음으로 통과시켰다. 2011년에는 성적 서비스 광고도 금지했다.
트리마르코는 목숨을 건 인신매매 조직 잠입과 조사 활동 끝에 딸의 인신매매에 관련된 13명을 찾아내 2012년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섹스산업 마피아의 힘은 만만찮았다. 몇달에 걸친 재판과 증언이 이어졌지만, 투쿠만주 지방법원은 그해 12월 1심에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고통을 지켜본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판결 일주일 만에 트리마르코와 면담을 해야할 정도였다. 결국 트리마르코는 무죄 판결을 한 지방법원 판사들을 부패 혐의로 탄핵하는 절차를 밟고 항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번 항소심에서 마침내 10명에 대해 중형을 받아낸 것이다.
어머니는 “내 딸에게 조금이나마 평화가 되기를 바란다”며 목메인 한마디를 남겼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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