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이는 국제석유시장
ISIL, 바이지 정유시설서 격전
엑손모빌·BP 등 안전우려 철수
북해산 브렌트유 9달새 최고가
전면전 확산땐 수급불안 커질듯
ISIL, 바이지 정유시설서 격전
엑손모빌·BP 등 안전우려 철수
북해산 브렌트유 9달새 최고가
전면전 확산땐 수급불안 커질듯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반군이 이라크 최대 정유시설의 통제권을 두고 정부군과 격전을 벌이면서 세계 석유시장도 술렁이고 있다. 이라크의 핵심적인 유전지대는 남부와 북부 쿠르드자치지역에 있기 때문에 현재 원유 수출이 직접 타격을 받지는 않지만, 전황이 악화하자 미국 엑손모빌과 영국 비피(BP) 등 서방의 주요 석유 기업들이 남부 유전지대에서 직원 철수를 시작하는 등 투자와 생산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로이터> 통신은 19일 북해산 브렌트유 8월 인도분 선물 가격이 장중에 배럴당 114.8달러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9월 이래 아홉달 만에 최고가를 갱신했다고 전했다. 이는 전날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 반군이 바그다드에서 250㎞ 떨어진 바이지 정유시설을 공격해 격전이 벌어지자 잠재적인 수급 불안이 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7월 인도분 선물 가격도 배럴당 106.53달러에 거래되는 등 전날과 달리 오름세를 나타냈다.
이라크 사태가 터진 뒤 국제 원유시세는 예상보다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반군의 바이지 정유소 공격 뒤, <로이터>는 “상당한 공급 차질이 멀지 않았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하며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18일 정유소 공격 이후, 이라크 군 대변인은 “정부가 완전히 시설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반군과 일부 정유시설 관리자들은 시설의 상당 부분이 반군 손에 들어갔다고 전한다.
이에 따라 이라크 현지에 진출한 다국적 석유 기업들의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엑손모빌과 비피는 18일 직원 철수를 시작했고, 로열더치셸도 상황 악화에 대비한 철수 계획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금껏 이라크 석유 수출과 생산은 전투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다”면서도 “(서방 주요 석유기업의) 직원 소개령은 반군의 빠른 진격 이후 서방 기업들의 판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라크는 세계 5번째 매장량을 지니고 있고,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 안에서 2위의 산유국이다. 당장의 전황이 수출에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라 해도 이라크의 정정 불안은 투기성이 강한 세계 석유시장에 우려를 키울 수밖에 없다. <비비시>(BBC)는 “이라크 전황이 석유시장에 공포감을 만들어냈다”고 짚었다. 바이지 정유시설의 생산 차질과 일부 외국인 직원들의 철수는 반군 진격 직전인 지난 17일 이미 시작됐다. 이 정유시설은 이라크 내수용 석유제품을 하루 30만배럴가량 생산하는데, 시설 가동이 계속 중단되면 내수용 석유제품 공급이 절반쯤 부족해진다. 결국 하루 330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해 약 280만배럴을 수출하는 이라크의 석유 수급 상황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라크가 전면적 내전에 휘말리게 되면 석유 수급의 미래는 더 불안해진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의 생산량은 아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이라크의 석유 증산은 늘어나는 세계 석유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17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향후 5년여간 석유수출국기구 증산의 60%를 이라크가 감당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번 반군 사태로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했다.
한편 영국 왕립 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의 폴 스티븐스 교수는 “이라크는 1차 세계대전 뒤 서방이 오스만제국의 땅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가 무너진다면 중동의 나머지 나라들에도 연쇄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이는 더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석유 생산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이라크 주요 유전지대와 정유시설 현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