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쿠르드 민병대인 페슈메르가 대원들이 9일 ‘이슬람국가’ 반군들과 전투 도중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280㎞ 떨어진 마을인 마크무르에서 잿빛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마크무르/AFP 연합뉴스
[미국, 이라크 반군 공습]
‘제한적 공습’서 입장 선회
공중전으로 아르빌 사수 뒤
통합정부 구성해 ‘대리 지상전’
말리키 퇴진 거부…정부구성 난항
미, 피 묻히지 않고 반군 소탕 의도
‘제한적 공습’서 입장 선회
공중전으로 아르빌 사수 뒤
통합정부 구성해 ‘대리 지상전’
말리키 퇴진 거부…정부구성 난항
미, 피 묻히지 않고 반군 소탕 의도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재개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지상군은 투입하지 않되 이라크 통합정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이하 이슬람국가)에 대한 반격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각) 휴가지로 떠나기 전 백악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가 수주일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것은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공화당 쪽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전략의 일단을 설명했다. 그는 7일 회견에선 미국인 및 미국 시설의 보호와 이라크 북부 신자르 산에 갇힌 소수종파 야지디족 구출이라는 인도주의적 목적을 위해 ‘제한적 공습’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9일엔 “이번 작전에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1차적으로 이슬람국가가 쿠르드 자치정부 수도인 아르빌로 진격하는 것을 차단하고, 야지디족 구출을 위한 안전 통로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을 포괄하는 이라크 통합정부 구성에 박차를 가할 것이며, 이 정부가 구성되면 이슬람국가에 대한 반격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다만, 그는 “미군이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배제하고, 이라크 정부와 쿠르드 자치정부가 지상을 맡고 미군은 공중전으로 지원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별도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이슬람국가를 퇴각시키는데 전략적 이해를 갖고 있으며, 그들이 시리아와 이라크에 칼리프 국가를 만들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칼리프는 이슬람교 선지자 무함마드의 대리인을 뜻하며, 이슬람국가는 지난 6월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런 목표가 쉽사리 달성될지는 미지수다. 미 국방부는 일단 아르빌 방어에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8일 이뤄진 세차례 공습에서 미군은 F-18과 드론(무인기)을 투입해 이라크 국가의 이동식 대포와 박격포 등을 파괴했다. 미 국방부 고위관리는 “아르빌에 막강한 억제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군은 9일에는 신자르 산 인근에 네차례 폭격을 가해 장갑차 5대와 무장트럭 1대를 파괴했다. 이슬람국가 쪽 사망자가 2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산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전 통로를 어떻게 마련해줄 수 있을지는 좀 복잡한 문제”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적진에 포위돼 있는 만큼 공습만으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보다 근본적 문제는 이라크에 세 정파가 수긍할 수 있는 통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정부가 구성되면 이슬람국가 장악지역 내 수니파는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 이슬람국가를 고립화시키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종파적 정국 운영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누리 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퇴진을 거부하고 있어 미국은 정부 구성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합정부가 구성된다고 해도 오합지졸로 퇴각을 거듭한 이라크 군대를 재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미국의 이번 이라크 공습은 3년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공동으로 나섰던 리비아 공습 때와 달리 미국 단독으로 진행되는 점도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부담이다. 인도적 재난이 발생하고 이라크 정부 및 쿠르드 자치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공조라는 모양새를 갖춰야 명분이 서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9일 지원 방침을 밝히긴 했으나, 인도적 지원에 국한하기로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현재 영국이 제안한 이슬람국가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논의중이지만, 여기에도 군사적 조처는 담겨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의 지지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미국이 공습에 나선 데는 전황이 급속도로 나빠진 것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르빌이 함락될 위험에 처하자 ‘제2의 벵가지 사태’가 될 것을 우려해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이 사건은 2012년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국 영사관이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아 미국인 4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오바마의 대표적인 대외정책 실패 사례로 꼽힌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