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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낮엔 장미, 밤엔 행진…“쏘지 말라” 거리로 나온 분노

등록 2014-08-20 19:48수정 2014-08-20 22:12

[미 퍼거슨 현장 르포] ‘흑인 사망’ 시위 확산
남녀노소 불문 평화적 시위
500여명 자정 넘도록 행진
일부, 경찰 공격해 충돌도
총격 경찰 유급휴가 중…분노 키워
세인트루이스 흑인 경찰총에 사망
미국 미주리주 소도시 퍼거슨시 웨스트 플로리산트 거리는 흑인들의 해방구였다. 18살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이 쏜 6발의 총알에 맞아 숨진 지 열흘째를 맞은 19일 퍼거슨시의 분위기는 일부 언론들이 ‘폭동’이라고 묘사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리에 나와 비교적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저변엔 마치 용광로처럼 분노가 끓고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주부 에버린(38)은 20살 난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아들도 차를 몰거나 다른 흑인 친구들과 모여 있을 때 백인 경찰의 불심검문을 당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며 “내 아들도 언제든지 마이클 브라운처럼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1일부터 매일 저녁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밤 10시께 흑인들의 행진 행렬에서 팻말을 들고 있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초등학생들과 10대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후 7시께 갑자기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흑인 아이들 7~8명이 “마이클 브라운에게 정의를!”이란 구호를 박자에 맞춰 합창을 하듯 외치며 행진했다. 16살이라는 캐머런과 렉시는 브라운이 죽은 장소에 장미꽃을 놓기 위해 왔다고 했다. 캐머런은 “우린 경찰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경찰이 우리를 두려워 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저스틴(31)은 브라운이 숨지기 10여분 전 절도행위를 했던 편의점 앞 교차로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장미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잃지 말라는 뜻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저녁 8시께 치안 책임을 맡고 있는 론 존슨 주 고속도로 순찰대장이 갑자기 이 편의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편의점 옆에 배치돼 있던 장갑차 위에서 경찰이 저격용 총을 잡고 있자, 그 총을 치우라고 지시했다. 그 뒤로 총은 자취를 감추었다. 교회 목사 등 지역 지도자들도 평화적 시위를 호소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날 시위는 다른 날에 견줘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밤이 깊어가자 흑인들의 감정은 점점 격해졌다. 밤 9시께부터 200~300여명의 흑인들은 손을 잡고 무리를 지어 웨스트 플로리산트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계속 행진하자! 밤을 세워 행진하자!” 또는 “정의 없이는 평화 없다”고 외쳤고, 간간이 두 손을 들며 “손을 들었다, 쏘지 말라”를 합창했다. 이들의 구호는 흑인들 특유의 리듬이 가미해졌고, 몇몇은 행렬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밤 10시께에는 인접한 다른 거리에서 온 200여명의 무리들이 합세했다. 이들의 행진은 자정이 넘도록 계속됐고,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목소리에선 더 격한 울림이 전해졌다.

이곳에서 만난 흑인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브라운에게 총격을 가한 경관을 빨리 형사 처벌하라는 것이었다. 이 경관이 유급휴가중이라는 점도 분노의 대상이었다. 극소수의 일탈 행위도 있지만, 일부 흑인들이 밤에 경찰을 공격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 연유하는 것 같았다. 이날도 자정 넘어 경찰에 유리병을 투척하는 행위가 빚어지며 충돌이 생겼다.

이들은 경찰을 포함한 지방 정부 자체를 불신하고 있다. 이것은 퍼거슨시의 인구 가운데 3분의2가 흑인이지만, 지방 정부의 요직은 모두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과도 연관된다. 퍼거슨시 경찰 53명 가운데 흑인은 단 3명뿐이라는 것이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빈곤율도 22%로 전국 평균(15%)을 훌쩍 넘고 있다.

이날 퍼거슨시와 접해 있는 세인트루이스에서는 23살 흑인 남성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쪽은 이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나를 지금 죽이라”라고 고함을 치면서 경찰관 2명에게 다가가던 중 총에 맞았다고 밝혔다. 경찰관들은 편의점에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이 남성을 발견한 뒤 흉기를 내려놓으라고 경고했으나, 이 남성이 경고를 무시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 사건 이후 세인트루이스 경찰서 앞에서도 흑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퍼거슨/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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