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그레그(87) 전 주한 미국대사
전 주한 미대사 회고록서 밝혀
“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미 정보당국의 가장 긴 실패”
“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미 정보당국의 가장 긴 실패”
도널드 그레그(87·사진) 전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외국 지도자들을 ‘악마화’하는 것이 미국 외교정책이 실패하는 주요 이유라며 그 대표적 사례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꼽았다.
그레그 전 대사는 <도자기 조각들(Pot Shards): 중앙정보국, 백악관, 그리고 두 코리아에서 살았던 삶의 파편들>에서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을 포함한 중앙정보국 생활 31년과 아버지 조시 부시 부통령 안보보좌관, 주한 미국대사 등으로 살아온 삶을 회고했다. 그는 “내가 관찰한 미국 외교정책의 다양한 패턴들을 되돌아볼 때 우리를 항상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한 것은 미국이 좋아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지도자들 또는 외국 단체들을 악마화하는 경향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경우에 미국은 무지의 공백을 편견으로 채웠고, 그 결과는 악선전으로 부추긴 적대감이며, 모든 당사국들에 피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옛소련 정보당국, 호치민 전 베트남 주석,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김정은 제1비서를 꼽았다.
그레그 전 대사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면서 “미국 정보당국의 역사상 가장 긴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 제1비서에 대해 “권력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2010년 3월 천안함을 침몰시킬 것을 명령했다는 것과 같은 주로 편견에 기반한 온갖 종류의 그럴싸한 중상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 제1비서가 외부 세계와 더 많이 접촉하면서 북한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길 원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 중국과 러시아의 사례를 보면 독재자도 변화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깨달으면 느리고 불완전하지만 평화적으로 변화한다는 걸 보여준다”며 북한과 대화를 통해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 시절인 19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1년쯤 전에 그를 방문했을 때 ‘박정희가 나를 납치해 살해하라고 중앙정보부에 직접 명령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한 미국대사 시절인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로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으나, 당시 딕 체니 국방장관이 자신과 상의도 없이 1년 만에 이를 부활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나중에 부통령이 된 체니가 남북한 화해를 저해한 여러 사건 중 첫번째”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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