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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개혁 저항하는 월가…하루 15억원 퍼부으며 ‘로비전’

등록 2014-10-02 19:52수정 2014-10-03 14:22

금융위기 이후 2011년 10월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시위대들이 ‘탐욕’과 ‘그릇된 우상’이라고 적힌 황금소 모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금융위기 이후 2011년 10월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시위대들이 ‘탐욕’과 ‘그릇된 우상’이라고 적힌 황금소 모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금융위기 6년, 반성 없는 금융자본

2008년 이후 월가 로비 금액 급증
로비스트 2000여명 규제 당국 활보
금융개혁안 줄줄이 로비에 ‘발목’

대형 은행 제출 ‘파산시 자구 계획’도
당국 기준 한참 못 미쳐 반려
‘대마불사’ 믿고 도덕적 해이 지속
8월 초 미국 워싱턴의 금융 규제 당국에선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규제 당국은 월스트리트 대형 은행들이 파산할 경우 전체 금융시스템은 물론 경제 전반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파산에 대비한 자구계획(이른바 ‘생존 유언장’(Living Will))을 제출토록 했는데, 월가 대형 은행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이 엉터리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자구계획은 대형 은행들이 덩치만 믿고 무모한 투자를 감행하는 이른바 ‘대마불사’ 행태를 바로잡으려는 조처였다.

규제 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형 은행들의 불투명하고 복잡한 투자 탓에 위기 전염을 차단하지 못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이들 은행들이 자산·부채 현황을 소상히 밝히고, 은행 구조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개선하는 방안을 제출토록 했다. 그러나 11개 대형 은행들은 마치 각본을 짜맞추기라도 한듯 모두 규제 당국의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자구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에 이어 벌써 두번째다.

토마스 회니그 연방예금보험공사 부의장은 분노에 가까운 성명을 내놨다. 그는 “월가 은행들은 수천쪽에 이르는 자구계획을 제출했지만 구제금융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뢰할 만하고 분명한 길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금융위기 6년을 맞았지만, 월가의 ‘대마불사’ 행태는 여전하다. 오히려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대형 은행들이 파산한 은행들을 합병하면서 덩치는 더 커졌다. 또다시 위기가 발생한다면 구제금융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월가의 저항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생존 유언장 제출기한은 다시 내년으로 미뤄졌는데, 월가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한 탓이다.

금융 규제개혁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베터 마켓’의 데니스 켈러허 대표는 지금 워싱턴의 의회와 규제 당국에선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워싱턴은 지금 사실상 규제 당국과 월가 로비스트들 간의 전쟁터다. 규제 당국은 도드-프랭크법을 이행하기 위한 세부규칙들을 제정하고 있는데, 월가의 강력한 로비에 부딪히고 있다. 의회와 규제 당국 사무실엔 월가 로비스트들이 넘쳐난다.”

월가의 로비 규모는 금융위기 이후 큰폭으로 늘었다. 월가가 의원들에게 제공한 선거자금과 로비스트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5~2006년에는 10억달러(약 1조300억원)에 못미쳤으나, 금융위기가 진행중이던 2007~2008년엔 13억달러, 2011~2012년엔 15억달러를 각각 초과했다. 2013~2014년엔 올해 4월 기준으로 벌써 8억달러를 넘었다. 금융개혁을 위한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금융개혁을 위한 미국인들’(AFR)은 이런 통계를 내놓으면서 “월가의 로비 규모가 하루 평균 150만달러(약 15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또 월가가 고용한 로비스트 숫자는 2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성조기가 걸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앞에 ‘월스트리트’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추진된 각종 금융개혁 정책은 월가의 막강한 로비에 막혀 크게 약화됐다. 뉴욕/AP 연합뉴스
성조기가 걸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건물 앞에 ‘월스트리트’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추진된 각종 금융개혁 정책은 월가의 막강한 로비에 막혀 크게 약화됐다. 뉴욕/AP 연합뉴스
로비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금융위기 직후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시키자는 안이 나왔으나 곧 사그라들었다. 의회는 2010년 포괄적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법’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이를 이행할 세부규정을 만드는 단계에서 월가의 로비에 발목이 잡혔다. 대표적인 게 ‘볼커룰’이다. 이것은 대형 은행들이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관행을 금지시키려는 것인데, 월가의 로비 영향으로 금지 규정이 크게 약화됐다. 금융위기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파생상품에 대해선 아직도 규제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다른 금융위기가 닥친다면 2008년의 재판이 되거나 훨씬 더 고통스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센터 소장은 “지금도 정부가 시티그룹이나 제이피모건의 파산을 허용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며 “이들 대형 은행들은 위기가 닥쳐도 또다시 구제금융을 받을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들은 사실상 낮은 금리로 차입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납세자들이 소수의 부유층에게 보조금을 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은행들이 대마불사가 되지 않도록 분리시키는 게 급선무이며, 생산적이지 못한 금융거래 팽창을 억제할 수 있도록 금융거래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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