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쿠바 53년만에 관계정상화
재선 때부터 대외정책 전환
작년 6월 쿠바와 비밀협상 시작
중간선거 패배 뒤 공화당 눈치 안봐
반쿠바계 유권자 감소도 한몫
금수조처 완전해제까지는 먼길
재선 때부터 대외정책 전환
작년 6월 쿠바와 비밀협상 시작
중간선거 패배 뒤 공화당 눈치 안봐
반쿠바계 유권자 감소도 한몫
금수조처 완전해제까지는 먼길
미국과 쿠바가 내놓은 53년 만의 관계 정상화 선언은 임기 2년을 남겨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업적 남기기’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후보 당시만 해도 “적들과도 단호하고 직접적인 대화를 할 것”이라고 밝혀 전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당시 “내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직접 만나겠다고 밝혔다. 그는 쿠바가 민주주의를 향한 조처를 취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면, “우리는 관계 정상화를 시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오바마의 대외정책은 매우 우유부단했다. 2008년 터진 경제위기 수습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결, 공화당과의 타협 등을 중시한 영향이 컸다. 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재선 이후부터다. 쿠바와의 비밀협상은 지난해 6월부터, 이란과의 핵 협상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했다. 오바마는 지난해 11월 연설에서 “내가 대통령에 출마할 때 국제사회에서 미국 리더십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이며, 10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세계와 새로운 관여의 시대를 시작할 때라고 말한 것을 여러분은 기억할지 모른다”며 “우리는 적들과도 명민하고 원칙적인 외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부터 비밀리에 대외정책의 기조를 대선 후보 시절의 ‘담대한’ 기조로 복귀시키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지난 10월 중간선거에서 대패한 이후 공화당을 의식하지 않는 정치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이민정책과 기후변화 대책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도 공화당 쪽이 강력히 반발하는 사안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조처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첫 6년을 특징지웠던 주저함에서 벗어난 가장 두드러진 사례”라며 “그동안의 신중한 정치적 계산의 시기는 지나갔다”고 평했다.
반쿠바계 유권자들이 줄어든 것도 이번 조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했던 쿠바계 이민자들은 주로 플로리다주에 거주하면서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 됐다. 미 의회에도 많이 진출해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동안 10명의 미국 대통령이 관계 개선에 나서지 못했던 주요 이유다. 그러나 쿠바계 이민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대선 때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플로리다주의 인구 구성이 다양해진 점이 오바마의 선택을 자유롭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오바마가 쿠바에 대한 금수조처를 완전히 풀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이번 조처는 오바마의 행정권한 범위 안에서 취해진 것이어서 한계가 있으며, 금수조처 해제는 의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기 때문에 금수조처의 완전한 해제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의회 내에서는 공화당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반발이 나오고 있다. 쿠바계 이민자로 대선 주자 물망에 오르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은 이날 “독재자에게 양보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원 외교위의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은 “쿠바에 대사관을 개설하는 자금 사용을 막기 위해 나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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