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 극장 앞에서 직원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암살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 포스터를 치우고 있다.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를 해킹했다고 주장하는 자칭 ‘평화의 수호자’(GOP)는 최근 이 영화가 상영되면 극장을 겨냥한 테러를 할 수 있다고 위협했고, 영화관들은 이 영화 상영 계획을 잇달아 취소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미 본토 기업 겨냥 사이버공격에
‘비례적으로 대응’ 원칙 의지 강조
백악관, 중국에 북 해킹 차단 요청
맞보복·북-미 대화 단절 부담감
‘비례적으로 대응’ 원칙 의지 강조
백악관, 중국에 북 해킹 차단 요청
맞보복·북-미 대화 단절 부담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암살 장면이 포함된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를 겨냥한 해킹과 상영 예정 극장에 대한 위협 사건에 대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북한의 행위가 전쟁 행위는 아니지만 비싼 대가를 치를 사이버 반달리즘(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등 사이버상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북한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기 폭파 사건으로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으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핵검증 합의에 따라 2008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현재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쿠바, 이란, 시리아, 수단 4개 나라다. 대화 재개 기류가 흐르던 북-미 관계가 할리우드의 코믹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란으로 다시 경색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앞서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19일(현지시각) 이번 사건의 책임자로 북한을 공식 지목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은 송년 기자회견에서 ‘비례적 대응’을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을 직접 거명하면서 “그들은 많은 손실을 초래했다. 우리는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경고했다.
미국이 어떤 방식, 어느 수위의 대응을 할 것이냐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 경제가 고립돼 있는데다 북한 인터넷망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아 대응 수단이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한다.
<뉴욕 타임스>는 20일 “백악관이 중국 쪽에 북한의 해킹 행위를 차단하는 데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해킹은 중국을 경유한 뒤, 볼리비아·싱가포르·타이에 있는 서버를 통해 수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북한의 인터넷망이 거의 대부분 중국 통신망을 경유하고 있어 미국이 북한의 해킹을 차단하려 하면 중국의 주권을 어느 정도 침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요청에 얼마나 협조해줄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사이버 보복’은 오바마 대통령이 천명한 ‘비례적 대응’ 원칙에 가장 들어맞는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인터넷망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것은 물론, 자칫 북한 쪽의 맞보복이 있을 경우 외부 개방성이 높은 미국이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알아챌 수 있지만 보복에 나서지 않을 수준의 대응 조처를 찾는 것이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
경제 제재와 특정 조직·개인에 대한 기소도 대응 카드가 될 수 있다. 경제 제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을 겨냥한 대러시아 제재처럼, 북한 지도부에 대한 금융 제재 및 여행 제한 조처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이런 조처는 상징성은 있으나 실효성은 크지 않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6년 만에 재지정하는 방안은 현재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전통적인 테러의 개념은 폭력이 수반되고 인명에 대한 위해가 있어야 하지만, 사이버 테러는 차이가 있어 법리적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경우 오바마 대통령 임기 안에는 북한과 대화 재개가 사실상 어려워지는 부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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