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피해로 정유난 심각”
개발규제 완화 추진…민주당 등 “환경파괴 감안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잇따라 미국의 에너지 상황을 우려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는 허리케인 피해로 인한 에너지 수급 상황 악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일부에선 최근의 상황을 빌미로 각종 규제완화 등 해묵은 숙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26일 워싱턴 에너지부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로 인한 에너지 수급 차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허리케인은 미국의 에너지 수요와 공급사이에 얼마나 균형이 깨지기 쉬운지 보여줬다”며 새로운 정유시설 건설과 기존 시설의 확장을 위해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과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 30년여간 환경과 효율성에 대한 시비로 정유시설을 건설하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정유난이 쉽게 해소되기 힘든 상황임을 시인하면서 미국인들이 에너지 절감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시급하지 않은 자동차 운행을 자제하고, 공무원의 경우 카풀제와 대중교통 적극 활용, 출장 억제 등의 방안까지 제시했다. 이는 절약보다 공급 확대에 주력해 온 미국 정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언급이다.
공화당 수뇌부들은 발빠르게 △멕시코만 연안 천연가스 시추 허용과 매장 가능성이 높은 지역 석유회사에 임대 △알래스카주의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 해안의 원유 시추 허용 △군사시설 이전 터에 새 정유시설 건설과 공기청정법의 적용 유예 △전략비축유 매각자금을 통해 비축시설 용량을 7억배럴서 10억배럴로 증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 초안을 잇따라 공개했다.
이들은 8월 통과된 에너지법에서 여론의 반발 등으로 빠진 것들이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들은 허리케인으로 에너지 수급 차질과 가격 상승을 틈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끼워넣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미 상·하원은 7월 말 정유회사에 대한 145억달러 감세와 원자력발전소 건설 장려 등을 내용으로 한 에너지법안을 통시켰으며, 부시 대통령은 완화된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으나 8월 초 법안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환경 단체들은 80년대에 승인된 에너지 법안을 상기시키면서 새로운 법안에 자동차연비 강화와 석유회사에 대한 초과 이득세 부과 등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석유업계 일각에서도 대증요법적 에너지 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환경단체인 ‘내셔널 인바이런먼트 트러스트’의 케빈 커티스 부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미 의회가 지난 5년여 동안 에너지 법안을 놓고 줄다리기 해왔다”며 “그러던 것을 허리케인 핑계로 단칼에 처리하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미유화정유협회(NPRS)의 로버트 슬로터 회장도 <월스트리트저널>에 “복잡한 에너지 문제를 하나의 거대한 법안에 집어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재로선 (에너지) 공급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피해로 인해 이번 주에만 7500만배럴의 정유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지 못해 수급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피해로 인해 이번 주에만 7500만배럴의 정유제품이 시장에 출시되지 못해 수급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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