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 몰리는 맨해튼 호화 부동산

신원 숨기려 유령회사 명의 이용
변호사가 서명하고 현금 거래
뉴욕 거래량 10년 전보다 3배 늘어
자금 출처 안묻는 법이 ‘유입’ 조장

전 세계 부자들이 ‘셸(shell) 컴퍼니’(이름뿐인 유령회사)를 이용해 ‘검은 돈’으로 미국 뉴욕 맨해튼의 고가 주거용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7일 보도했다.

대표적인 예가 조직범죄와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는 비탈리 말킨(63) 러시아 전 상원의원이 1565만달러(171억여원)에 2010년 사들인 뉴욕 타임워너센터 내 초호화 콘도다. 실제 주인은 말킨이지만, 명의는 ‘25CC ST74B’라는 기호처럼 생긴 이름의 유령회사로 돼 있다. 서류 어디에도 말킨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말킨 소유의 콘도 몇층 아래에 있는 2140만달러짜리 콘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류상 명의는 또다른 유령회사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그리스에서 부패 혐의로 체포된 그리스 사업가 디미트리오스 콘토미나스다.

타임워너센터의 콘도중 37%는 외국인 소유인데 적어도 16명은 해당 국가 정부 등에서 부패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이 중 4명은 체포된 상태고 또다른 4명은 벌금형 등을 선고받았다. 대부분 각국 정부의 고위직 출신이거나 정부 고위인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로 국적은 러시아, 콜롬비아, 중국, 카자흐스탄. 멕시코 등이다.

어떤 나라의 어떤 인물이 검은 돈을 이용해 뉴욕의 호화 주거용 부동산을 사들였는지 전부 알기도 힘들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거용 부동산 주인임을 숨기기 위해서 유령회사 명의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계약을 할 때 서명은 변호사가 대신 하고, 세금 신고도 유령회사를 통해 한다. 은행 거래는 개인 이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거액의 부동산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거래는 보통 현금으로 한다. 콘도에도 초인종이 없고 거주인 명의로 된 우편함도 없어서 서로 누가 사는지 알기도 어렵다.

유령회사를 이용하는 건 일반적인 수법이다. 타임워너센터에서만 유령회사 200개가 호화 콘도를 소유하고 있다. 타임워너센터 내 주거용 부동산 64%가 유령회사 명의이며, 트럼프인터내셔널과 블룸버그타워 내 주거용 부동산의 각각 57%도 유령회사 명의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도 500만달러 이상 주거용 부동산 구입 중 거의 절반은 유령회사 명의로 돼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유령회사인 셸 컴퍼니는 대부분 유한회사(L.L.C.)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원래 원유 거래 등에 개인의 책임 등을 줄이기 위한 용도 목적으로 1970년대 와이오밍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부동산 거래에서 개인 이름을 숨기기 위한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셸 컴퍼니 주인이 누구인지 조차도 밝히지 않아도 된다. 미국에서도 법망에 난 구멍을 메우자는 의견이 있지만, 부동산 업자 등은 “금융에 견줘 부동산에서 돈 세탁은 적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뉴욕의 호화 주거용 부동산 거래는 호황이다. 부동산 관련 정보 사이트인 <프라퍼티 샤크>에 따르면 뉴욕에서 500만달러 이상 고가 주거용 부동산 거래액이 최근 거의 80억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10여년 전에 견주면 3배 이상이다.

조기원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