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2일 코미디언 마크 마론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마크 마론의 자택 차고에서 진행된 이날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깜둥이’라는 금기어까지 사용하며 미국의 인종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마크 마론 트위터 갈무리, 연합뉴스
코미디언 마론 팟캐스트 출연
“노예제도 미국인 삶에 긴 그림자”
총격 벌어진 사우스캐롤라니아주
‘남부연합기’ 철거 공식 요청
“노예제도 미국인 삶에 긴 그림자”
총격 벌어진 사우스캐롤라니아주
‘남부연합기’ 철거 공식 요청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흑인을 모욕하는 금기어인 ‘깜둥이’(nigger)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며 미국 내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는 등 흑인교회 총격 사건의 파장이 더 커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코미디언 마크 마론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미국은 인종차별주의를 치유하지 못했다”며, 단순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깜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인종주의를 제거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또 “200∼300년 전에 일어난 일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다”며, 노예제도가 미국인들의 삶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말했다.
깜둥이라는 단어는 미국 사회, 특히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써서는 안되는 단어로 여겨진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등이 사석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긴 했으나,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대통령이 사용한 것은 여러 세대만에 처음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렇게 도발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건이 미국 사회에 던지는 충격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케이블 티브이 등에서는 논쟁이 들끓었다. 미국도시연맹의 마크 모리얼 대표는 이 단어가 경멸적인 언어라면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단어를 대통령이 사용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나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있으며, 여론의 반응에 대해서도 놀라워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단어는 오바마 대통령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강조해 온 요점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총격사건이 발생한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니키 헤일리 주지사가 주의회에 내걸려 있는 ‘남부연합기’의 철거를 주의회에 공식요청한 것이다. 남부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 소유를 인정한 남부연합의 공식 깃발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헤일리 주지사는 지금까지 이 깃발을 인종차별이 아니라 조상들의 희생을 표시하는 상징물로 여긴다는 남부 백인들의 주장에 동조해왔던 인물이다. 이렇게 태도를 180도 바꾼 데는 사건 현장인 흑인교회 밖에 ‘남부연합기를 철거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리는 등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남부연합기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야만스럽게 모욕적인 과거에 대한 지극히 모욕적인 상징”이라며 “이번 사건이 우리로 하여금 이를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장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 등 민주·공화당 가릴 것 없이 많은 정치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2년 전 무산됐던 총기 규제 법안을 재추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2년 어린이 20명을 포함한 26명의 희생자를 낸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 법안을 추진했으나 상원에서 부결된 바 있다. <뉴욕 타임스>는 “어린이 20명이 숨진 사건이 의회를 움직일 수 없었다면 흑인 9명이 숨진 사건도 그럴 것이라는 체념이 의원들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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