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23일 민권운동가들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회가 인종차별의 상징인 남부연합기를 없애자는 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지지하며 남부연합기를 태우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주류라 여겼던 사회적 기준들
최근 일주일새 180도 뒤집혀
진보적 정책들 잇따라 승리
NYT “공화, 문화전쟁서 완패”
깅그리치 “마치 꿈 꾸는것 같다”
최근 일주일새 180도 뒤집혀
진보적 정책들 잇따라 승리
NYT “공화, 문화전쟁서 완패”
깅그리치 “마치 꿈 꾸는것 같다”
성·인종·건강보험 등 주요 사회적 이슈에서 진보적 정책들이 잇따라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 보수파들이 충격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 보수파들은 자신들이 정상 또는 주류라고 여겼던 사회적 기준들이 최근 일주일 사이에 180도 뒤집어지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찰스턴 흑인교회 총격 사건 후폭풍으로 남부 백인들의 자존심인 ‘남부연합기’가 주 의회에서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했다.
또 자기편이라 여겼던 연방대법원이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 케어)의 연방정부 보조금 지급을 합헌으로 결정하면서 정부 개입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려는 보수파의 이념이 보기좋게 퇴짜를 맞았다. 여기에다 이성간 결합으로만 받아들여온 결혼이 동성간에도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주요 사회적 이슈에서 보수파는 사실상 완패를 당했다. 최근 올림픽 육상 챔피언으로 유명한 브루스 제너가 성전환해 여성 케이틀린 제너로 ‘재탄생’한 것도 보수파들로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마치 폭포처럼 쏟아진 일련의 결정들로 인해 2015년은 ‘진보의 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공화당이 문화 전쟁에서 완패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했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보수강경파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에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은 좌파 광기의 새로운 단계를 목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중 한명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아이오와주 유세 중에 지지자들과 나눈 대화는 공화당원들이 받고 있는 충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침례교 목사인 제프 혼츠(49)는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변치 않는 삶의 기준을 주셨지만, 사회는 바뀌고 있다. 오늘 아침엔 트렌스젠더 쇼를 선전하는 티브이 광고를 봤다”고 말했다. 보건교사인 메리 클레인(79)은 “개구리를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다가 나중에 죽는다”며 “지금 미국 사회가 그런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에 허커비는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건 조율 안 된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소금과 밀가루, 설탕을 적절히 섞지 않은 빵을 굽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들을 다독였다.
최근 <뉴욕 타임스>와 <시비에스>(CBS) 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88%의 공화당 지지자들이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같은 답변을 한 응답자의 예년 평균치(63%)에 견줘 크게 높은 것이다.
공화당으로선 주요 사회적 이슈에서 진보적 흐름이 대세가 되는 현상이 내년 대선에 끼칠 영향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동성결혼 이슈만 해도 현재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후보들이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이번 판결에 반대를 표시했다. 공화당 일각에선 사회적 이슈들과 관련한 논쟁에선 공화당이 승산이 없는 만큼 대선보다 훨씬 앞서 미리 결론이 내려진 것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화당 대선 주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공화당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경제나 안보 이슈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처럼 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허커비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같은 보수강경파들은 동성결혼 같은 이슈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예비경선에서 사회 이슈들이 큰 쟁점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여기에다 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화당의 이런 약점을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지난 29일 유세에서 “공화당은 우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차별 반대’의 대열에 함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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