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주요 국제 현안을 논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첫 공습 대상이 이슬람국가(IS)가 아닌 미군이 지원하고 있는 시리아 반군이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자, 미국은 상당히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30일(현지시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의 공습을 두고 “정치적 이행을 추구하지 않은 채로 (이슬람국가와) 싸우는 것은 내전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며 “이런 접근법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유사하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러시아가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옹호하면서 미군이 무기를 지원하고 훈련시킨 반군을 공습한 행위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러시아가 공습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도 미국의 ‘배신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러시아가 공습 1시간 전에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과 접촉했지만, 미국의 작전 지역에 대한 공습을 조율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한 맞불 작전으로, 미국도 30일 러시아에 사전 경고를 하지 않고 시리아 알레포 근처를 공습했다.
미국의 기대치에서 벗어난 러시아의 공습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사태에 대한 대처 방정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의 ‘강경 대응’ 주문에 밀려, 공습에 국한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이슬람국가 격퇴 작전에 나서는 타협책을 택하긴 했지만,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계기로 미국 내에서 지상군을 파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질 수 있다. 실제, 존 매케인 미 상원 국방위원장은 이날 미국이 시리아에서 지상 작전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좀더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 정책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고든 신미국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을 통해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에 직접적 군사적 지원을 할 것 같지는 않다”며 “러시아가 군사력 사용을 이슬람국가 공격에 사용하는 것으로 엄격히 제한한다면, 시리아 전쟁을 끝내기 위해 새로운 외교적 제안들을 놓고 러시아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이날 오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긴급회동한 뒤 시리아에서 미-러간 우발적 충돌을 피하고 러시아의 공습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한 논의를 1일부터라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말기에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치를 수 있는 미 지상군 파견보다는 러시아 및 아사드 정권과의 외교적·타협적 해법에 우선순위를 두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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