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극심…볼리바르 폭락
암시장·공식 환율 차이 100배
암시장·공식 환율 차이 100배
베네수엘라에 사는 엔지니어 페드로 베네로는 올해 초 자신의 차에서 강도한테 납치당했다. 베네로는 강도들이 자신을 은행에 끌고가 돈을 인출하게 할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강도들은 베네로에게 집에 보관하고 있는 달러만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은행에 예치돼 있는 베네수엘라 화폐인 볼리바르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극심한 물가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는 강도들조차 가치가 폭락한 볼리바르를 원하지 않을 정도라고 <뉴욕 타임스>가 18일 보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159%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페인트 1갤런(3.78ℓ)이 지난 13일 6000볼리바르였는데 사흘 뒤인 16일에는 갑절인 1만2000볼리바르로 뛸 정도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환율을 달러당 6.3볼리바르로 고정해놓았지만, 암시장 환율은 딴판이다. 영화 표 1장 가격은 보통 380볼리바르로 공식 환율로 치면 60달러나 되지만, 암시장 기준으로 따지면 54센트밖에 안된다. 최저임금은 7421볼리바르로 공식 환율로는 1178달러지만 암시장 기준으로는 10.6달러에 그친다.
볼리바르 가치 폭락의 가장 큰 원인은 주요 수입원인 원유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균형 재정을 달성하려면 유가가 배럴당 160달러는 돼야 한다는 평가가 많지만, 최근 유가는 브렌트유 기준으로 50달러 초반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고액권인 100볼리바르는 품귀 현상을 보이는 아이러니한 일도 벌어지고 있다. 달러가 아닌 바에야 고액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암시장 활성화로 현금거래가 많아진 것도 품귀 현상의 원인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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