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악순환의 축, 트럼프

등록 2015-12-25 21:20수정 2015-12-26 10:00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후보가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경선후보가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토요판] 커버스토리
허핑턴포스트 편집장들이 본 ‘2015 세계’

‘허핑턴포스트’ 12개국 편집장들이
2015년 세계를 물들인 뉴스를 꼽다
세계적 온라인뉴스 매체인 <허핑턴포스트> 12개국의 편집장들에게 올해의 뉴스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프랑스 파리의 테러, 일본인 기자의 참수,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 위기 등 올해는 증오, 불안, 복수 등 세 축으로 돌아가는 악순환 벨트가 작동한 한해였다. <뉴스위크> 정치전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하워드 파인먼은 ‘불안’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했다. 미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 이면에는 미국 중산층의 경제, 문화, 안보에 대한 공포 심리의 발호와 이를 자극해 지지율을 올리는 선동술이 있다고 파인먼은 분석한다. 불안의 촉매가 짙어질수록 관용의 농도는 옅어진다. 프랑스는 이슬람국가(IS)를 곧장 공습했고, 독일 난민보호소에서는 거의 매주 방화사건이 일어난다. 불안은 그러나 항상 그런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시리아 소년 알란 쿠르디의 난민 신청을 거부한 정부를 비판하면서 자유당이 집권당이 됐고 난민을 대폭 받아들였다. 긴축정책과 난민 유입으로 혼돈의 한해를 보낸 그리스의 니코스 아구로스 <허핑턴포스트 그리스> 편집장은 세계시민주의를 내놓는다. 보편적 가치로 다른 세계와 연대하는 것이 그리스와 유럽을 구원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연결된 세계를 사는 우리에게도 주는 깨달음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불안과 증오의 시간이 트럼프를 키웠다

▶ 미국 공화당 대권 레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슬림 입국을 금지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자는 괴이한 주장의 주인공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무언가? 비정치적 대중을 타깃으로 테러가 발생하고 난민과 이민자들이 혼돈하는 세계화 시대의 지구는 지금 증오와 불안이라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안고 있다. 야만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문명의 방향으로 갈 것인가. 내년도 도널드 트럼프의 운명은 증오와 불안을 처리하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랜드래피즈/AP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21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그랜드래피즈/AP 연합뉴스

미국 당신은 정말 충격적이야

2015년 미국에서 가장 큰 뉴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충격적인 등장과 그를 통해 표상된 미국이었다. 미국이 어떻게 세계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거칠게 말하면 세계를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하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베트남전에서 이라크전까지 잘못된 전쟁에 쓰인 수조달러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위상과 인구 구성의 변화는 유권자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안겨주었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크게 세가지다. 경제, 문화 그리고 안보.

경제적으로 중산층 유권자들은 중국과 아시아 나라에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기고 남아메리카 출신의 저렴한 임금의 이주노동자들로 인해 임금이 깎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적으로는 이 사람들 중 대다수가 그들의 가치와 신념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이 ‘정치적 올바름’과 ‘소수자 권리’에 관심을 쏟는 대중매체와 엘리트 대학 그리고 정부 관료들에 의해 공격당한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9·11 사태에서부터 최근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총기난사 사건까지 유권자들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의 태만한 경계도 비판받고 있지만, 비난의 화살은 미국 바깥에서 내부로 번지고 있는 폭력적인 이슬람 지하디스트 운동에 더 맞춰지고 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몇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미국 시민과 기독교인이 맞느냐고 따지면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곧 사라질 시끄러운 사람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그는 텔레비전 리얼리티쇼에 나오는 억만장자 거물이었다. 게다가 마케팅의 대가(정치적인 용어로는 ‘선동가’)였다. 뉴욕 세일즈맨의 기민한 본능과 뉴스 미디어와 파티 리더에게 무엇이든 겁없이 말하는 태도 등 그는 모든 방식으로 모든 공포에 다다랐다. 이렇게 불안한 중산층의 대변인이 되면서 공화당 대선후보 전당대회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고집 센 강자의 페르소나를 가졌다. 쉽고 시원시원하면서도 거침없는 화법으로 대중의 공포를 자극한다. 그러나 내용은 비현실적이거나 불법적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다. 멕시코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국경 지역에 장벽을 세우자거나, 중국과 한국, 일본(미국 부채 수십조원을 소유한!)에 더 엄격해지자고 한다. 가장 최근의 논쟁적 제안은 무슬림의 입국을 완전히 금지시키자는 것이었다. 여행자든, 누구든, 어디에서 왔건 상관없이 말이다.

하워드 파인먼 <허핑턴포스트 미국>글로벌 디렉터
하워드 파인먼 <허핑턴포스트 미국>글로벌 디렉터
이런 무시무시하고도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는 심지어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딕 체니 전 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비롯해 전세계 좌우 막론한 정치인과 미디어 모두 도널드 트럼프를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날 조짐을 보여주지 않고 있고, 연말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퇴출되어 제3후보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대다수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 비슷한 반무슬림 공약에 애매모호한 언어의 옷이 입혀져 공화당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탄생한 영웅신화의 제2막은 2016년 뉴스를 장식할 것이다. 자, 이제 미국은 어떻게 도널드 트럼프를 다룰 것인가?

하워드 파인먼 <허핑턴포스트 미국>글로벌 디렉터


11월13일 프랑스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 직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바타클랑 콘서트홀 앞에서 한 남성이 존 레넌의 ‘이매진’을 연주했다. 파리/AP 연합뉴스
11월13일 프랑스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 직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바타클랑 콘서트홀 앞에서 한 남성이 존 레넌의 ‘이매진’을 연주했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 ‘전투가 바꾼 사람의 마음’

새해 벽두와 세밑에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발생했다. 2015년 프랑스의 가장 큰 뉴스는 1월과 11월 발생한 두개의 테러다.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첫번째 테러는 표현의 자유와 프랑스 유대인을 타깃으로 했다. 파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두번째 테러는 대중의 일상을 공격했다. 두 사건 모두 프랑스에서 태어난 테러리스트의 소행이었다. 프랑스의 정신은 추락했고, 정치적 논쟁은 잡탕이 되어버렸으며, 이제 어떤 것도 예전의 프랑스가 아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빅토르 위고는 “전투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11월13일 위고의 말이 현실화되었다. 아니, ‘적의 마음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우리 시민 동지를 격분케 한 것은 일관성 없거나 중립적이려고 하는 태만이 더이상 아니게 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혐오”, “혐오스러운 공격”, “야비한 살인자들”이 이제 분노의 대상이 됐다. 좌파 출신 올랑드 대통령은 지금 프랑스적 가치를 지키면서 이런 분노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자 대통령’의 부상을 촉발시켰던 우파는 물론 극우파의 요구 또한 받아들여 정책 속에서 통합시켜야 하는 책무를 그가 떠안고 있다. 11월13일의 재난 이후 상징적으로 타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러한 질문은 결국 시간이 대답해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테러를 막기 위해 헌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감정의 격랑에 휩싸였을 때 헌법을 바꾸는 게 과연 옳은지에 대해서도 시간은 말해줄 것이다. 좀더 솔직해지자. 우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수없이 조롱해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위기를 반복적으로 불러올 수 있는 헌법 개정을 검토하는 대신 관련 법을 개정했다.

전세계가 그러하듯 프랑스 정부도 외교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 또한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다시 솔직해지자. 지금 우리는 오래전 우파가 만들고 좌파가 격렬히 반대했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번의 연설로 헌법을 바꿀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프랑스의 외교적 접근은 결점투성이이자 제 잘못이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11월13일 테러 직후 크게 박수 받은 올랑드 대통령의 연설은 최근 사건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과 궤를 같이한다. 연설은 대통령의 지분(올랑드의 명성있는 기술)이고 굳건하고 결단력(가끔씩 비난받은 그의 유연성과 정반대)이 있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올랑드 대통령이 이슬람 급진주의, 이슬람주의, 근본주의와 차별·혐오 발언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살 이후 남겨진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를 포위한 증오와 민주주의를 불안케 하는 이 깊은 위협의 정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안 생클레르 <허핑턴포스트 프랑스> 편집인


영국 변방 좌파 노동당수의 등장

올해 가장 큰 뉴스는 누가 뭐래도 야구장 벤치 뒤에만 머물던 제러미 코빈의 등장이다. 200 대 1에서 시작한 그는 30여년 동안 노동당에서 조용히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무기 문제에서 왕실 문제까지 모든 이슈를 논쟁적인 좌파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그의 등장은 단순한 정치적 성공 스토리 이상이었다. 대다수가 비판하는 내용이긴 했어도 모든 미디어 이슈를 그가 집어삼켰다. 권력 부상의 핵심에 존재했던 소셜미디어에서는 지금 그의 지지자와 비평가들 사이에 잔인한 공격과 방어의 말들이 번식하고 있다.

재클린 하우스든 <허핑턴포스트 영국>뉴스에디터


2015년 세계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그리스 ‘세계시민주의’의 길을 가라

정부가 지배하는 나라라기보다는 선거가 지배하는 나라. 그리스는 지난 1월 총선에서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집권당이 되면서, 국가의 채무위기가 재현됐다. 정부가 추진한 국민투표가 공포를 촉발하고 자본에 대한 정부 지배가 강화되면서 경제위기의 노정에서 최고의 긴장을 보여준 한해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사건은 긴축정책에 반대해온 급진적 좌파 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시리자)가 9월 조기총선에서 다시 선택돼 도리어 긴축정책을 강화한 것이다. 2015년은 그리스에 극단적으로 정치적인 한해였다. 그러나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 소란의 결말은 아직 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리스의 문제가 유럽연합의 문제라는 걸 자주 망각한다. 최근의 채무위기가 이를 보여준다. 고삐 풀린 듯 쏟아지는 이민자와 난민 행렬의 혼돈도 이를 역설하고 있다. 세계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아주 복잡하고 뒤섞인 현상의 총체가 되어버렸다. 이를테면 우리는 시장과 금융권이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포스트 대처리즘이 절실하다거나 철지난 변증법적 반자본주의의 판타지에 빠지면서 현실을 외면한다.

유럽은 그리스 문제에 관한 한 꾸물거리며 대처를 미뤘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그리스 모두에서 위기가 커졌다. 그리스에서 대처리즘을 압도한 그리스사회당(PASOK)의 국가 중심 자본주의(사회주의) 독재는 2008년 경제위기와 함께 붕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리스가 당면해 도전해야 하는 지점에 나라를 서게 했다.

2015년 그리스에 새겨진 모든 상처는 유럽에도 새겨진 것이다. 반대로 유럽에 난 상처도 그리스에 새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의 근원이 그리스가 유럽연합의 처방을 따르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유럽연합의 처방이 세계화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제기된 문제에 해결하는 메커니즘과 대응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아직 유럽은 터득하지 못했다. 그저 자기가 꾸물거린 잘못을 칼뱅주의 교도처럼 그리스에 채찍질이나 하면서 돌리고, 세계화로 발생한 경제·사회적 곤란을 그저 수동적으로 인내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채무협상에 대한 ‘위대한 합의’를 신성화하며 유럽연합은 계속 시간을 벌었지만, 과거의 문제들과 새로 제기된 문제들을 두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난민 위기로 분열된 유럽이 겪고 있는 혼란을 냉정하게 응시해야 한다. 유럽정상회의는 모든 질환의 ‘진통제’다. 표면적으로나마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를 단순명쾌하게 정의해버리고 단기처방에 나서는 건 민주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선한 의도와 인도주의적으로 위기를 바라보는 ‘효과 없는 처방’ 또한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적인 처방도 한계를 갖고 있다.

이 위기를 빠져나가는 그리스와 유럽연합의 출구는 유럽 통합으로 향하는 노상에 있다. 진정으로 유럽의 통합을 달성하려면 공통의 예산과 공통의 부채, 하나의 재정부 장관과 외교정책 그리고 똑같은 기준으로 부여되는 유럽 난민 지위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공공지출 감소에 따른 구별과 차별, 정의와 민주주의의 격차가 사라지고, ‘정부가 우파냐, 좌파냐’ 하는 우려와 폭력 사건 증가에 속수무책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파는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싫어하고 좌파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싫어한다. 그러나 운명의 날 맞닥뜨릴 질문과 목표는 다시 한번 ‘세계시민주의’다. 우리가 우리 세계의 시민이자 다른 세계의 시민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과거의 그리스는 위대한 것들을 성취해왔다. 그리스 시민이 곧 세계시민이었다. 그리스의 부활은 과거와 현재의 변증법에서 출발하지 않고 그리스와 유럽의 윤리적·정치적 관계에서 세계시민주의의 전통을 다시 세우는 데서 나온다. 그것이 그리스의 유일한 도전이자 해결책이다.

니코스 아구로스 <허핑턴포스트 그리스>편집장


한국 우린 진정 표절의 위악을 아는 몸이 됐나

2015년 한국을 심장부터 꺼내어 뒤흔든 사건은 한둘이 아니다. 그중 많은 사건은 경복궁 뒤에 자리잡은 한 고즈넉한 건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다만 사회적, 문화적으로 한국의 가장 오래된 환부 중 하나를 통째로 꺼내어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신경숙 표절 사태를 올해의 가장 큰 뉴스로 꼽아도 썩 어울릴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이응준 작가가 기고한 블로그로부터 시작됐다. 이응준은 신경숙의 <전설>의 일부분이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의 한 대목을 표절했다고 지목했다. 침묵을 지키던 신경숙은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변호하고 나섰다. 창비는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했다.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말은 대단했다. 그 문구를 누가 생각해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한국 역사상 매체를 통해 공개된 수많은 사과와 해명 중 그만큼이나 방어적으로 공격적인 문장은 본 기억이 없다. 그리고 사과와, 해명과, 사과 비슷한 해명과, 해명 비슷한 사과와, 그에 대한 짜증 섞인 사과 비슷한 것들이 반복됐다.

사실 표절을 통해 하나의 신화가 무너진 사례는 다른 문화 영역에서도 이미 존재한다. 신성일과 엄앵란, 트위스트 김이 출연했던 <맨발의 청춘>(1964)은 30여년간 한국의 60년대를 상징하는 청춘 영화였다. 그러나 사실 이 영화는 바로 전해인 1963년 작 일본 영화 <진흙투성이의 순정>을 완벽하게 베낀 일종의 ‘복사 영화’였다. 지금은 누구도 <맨발의 청춘>을 한국 영화계가 자랑할 만한 유산으로 여기지 않는다. 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작품 중 하나인 <투캅스>는? 자, 이 영화를 명확하게 표절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법률적인 자문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를 본 적이 있다면 <투캅스>를 완벽하게 변호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한국은 부인할 수 없는 표절 사회다. 문제는 이 표절이 마치 겨울 스웨터에 깊숙하게 박힌 고양이의 털처럼 완벽하게 모든 곳에 스며든 나머지 표절 자체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거의 무용한 일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혹은, 종종 한국인의 무의식은 명백한 표절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새우깡은 일본의 갓파에비센이 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우깡은 여전히 우리의 ‘국민 과자’로 남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응준 작가의 단호한 지적을 통해 한국은 우상의 표절을 지적하고 파헤쳐서 침묵하는 카르텔을 뒤흔드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됐다. 그 기쁨은 지속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대답은 신경숙이 새로운 장편을 가지고 나오는 날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김도훈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편집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를 밀어붙이고 한편으로 시리아 난민을 전격 수용하면서 유럽 정치를 이끌었다. 지난 10월 그리스 시민이 메르켈을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아테네/EPA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를 밀어붙이고 한편으로 시리아 난민을 전격 수용하면서 유럽 정치를 이끌었다. 지난 10월 그리스 시민이 메르켈을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아테네/EPA 연합뉴스

독일 내년 지방선거를 벼르는 신우익

올해 독일은 변화했다. 몇년 동안의 경제적 대호황 이후 대중들은 두 편으로 갈라졌다. 한편은 “우리가 난민들을 껴안겠다”고 선언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편에 서 있는 이들이다. 올해에만 100만명이 유입된 난민들을 독일 사회에 통합시킬 수 있으리라고 자신하는 이들이다. 반대편 사람들은 공포에 빠져 있다. 난민의 증가 그리고 이로 인한 독일 사회 정체성의 상실에 대해 이들은 두려워한다. 반이슬람 우익단체인 ‘페기다’(Pegida)나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난민 캠프에서 거의 매주 일어나는 방화 사건은 독일의 정치적 풍경이 바뀌었음을 웅변한다. 이제 신우익들은 독일 정부는 물론 전통적 미디어 그리고 자유주의 정책까지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내년 독일 전역에서 치러질 지방선거는 의미심장한 시험대다. 우파가 권력을 획득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그들이 독일을 바꾸어왔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올해 초와 비교해보면 실제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제바스티안 마테스 <허핑턴포스트 독일> 편집장


이슬람국가(IS) 추정 세력에 의해 참수 살해된 일본인 언론이 고토 겐지.  유튜브 갈무리
이슬람국가(IS) 추정 세력에 의해 참수 살해된 일본인 언론이 고토 겐지. 유튜브 갈무리

일본 나도 IS 타깃 될 수 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는 지난 1월 이슬람국가(IS)가 고토 겐지 기자를 비롯한 두 명의 일본인 인질을 죽인 사건이다. 전후 평화주의에 익숙하고 인질 사건에 정서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고토 겐지 기자가 참수된 사건은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이 사태로 수많은 일본인들, 특히 장기 해외거주 일본인들은 자신의 국적이 이슬람국가(IS)의 타깃이 될 수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다카하시 고스케 <허핑턴포스트 일본> 편집장


스페인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의 약진

스페인은 지난 20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뜨거운 한해를 보냈다.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 국민당(PP)이 여론조사에서 앞섰지만, 전통적 제1야당인 좌파 사회노동당(PSOE) 외에 두 신생 정당의 반격도 맞닥뜨려야 했다. 좌파연합인 포데모스(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는 꽁지머리에 젊고 카리스마 있는 교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중도적 자유주의 성향의 시우다다노스(‘시민들’이라는 뜻)는 카탈루냐 출신의 에너지 넘치는 알베르트 리베라가 선두에 섰다. 스페인 경제는 3%의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여전히 21%의 높은 실업률, 정치적 부패, 긴축정책 등을 염려한다. 북동 지역의 카탈루냐에서 일어나는 분리독립 운동도 역시 정치적 의제로 대두됐다. 선거 결과 스페인 정치를 30여년 지배해온 양당체제는 붕괴됐고, 포데모스와 시우다다노스가 약진하면서 4당체제가 출범했다.

기예르모 로드리게스 <허핑턴포스트 스페인> 편집장


 

이탈리아 ‘가장 위험한 유럽’을 자각

유럽은 이제 서방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루치아 안눈치아타 <허핑턴포스트 이탈리아> 편집장은 위와 같은 제목으로 파리 테러의 여파를 요약한 적이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왜 이미 여기 성큼 다가와 있는지, 그리고 그 무대 중 하나가 왜 유럽인지, 파리 테러 이후의 사건들이 보여주었다. 구 대륙(유럽)은 다시 한번 서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됐다.

줄리아 벨라르델리 <허핑턴포스트 이탈리아> 정치에디터


오스트레일리아 토니 애벗, 총리직 탈환할까

오스트레일리아 2015년의 뉴스는 토니 애벗 총리가 갑작스럽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당 대표 선출 투표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난 사건이다. 대중적 인기가 높지 않던 맬컴 턴불 통신장관은 일년 내내 바닥을 돌아다니며 표를 끌어모았고 지난 9월 집권 자유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제29대 총리에 오른 턴불 총리의 허니문 효과는 연말로 사라졌고, 토니 애벗은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회에서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토리 매과이어 <허핑턴포스트 오스트레일리아> 편집장


브라질 지우마 호세프에 등을 돌리다

브라질은 올해 크나큰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재선되어 첫해를 보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해 벌써 60% 이상의 국민이 등을 돌렸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대선 때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공약이 거짓말이 돼버린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경제공약이 급조됐음이 드러났다. 호세프 대통령 탄핵론자들은 네가지를 탄핵 이유로 든다. 높은 금리와 인플레이션, 그리고 에너지 가격 상승이었다. 올해에는 실업률 또한 증가했다. 대통령의 탄핵 위기와 함께 유력 인사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에두아르두 쿠냐 하원 의장은 부정수뢰와 돈세탁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호세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적수다. 지금 브라질 정치는 혼돈 속으로 빠지고 있다.

지에구 이라에타 <허핑턴포스트 브라질> 편집장


터키 해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살배기 어린이 알란(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보드룸(터키)/AP 연합뉴스
터키 해안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세살배기 어린이 알란(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보드룸(터키)/AP 연합뉴스

캐나다 정권교체 촉매가 된 시리아 소년

캐나다에서는 알란 쿠르디의 죽음이 가장 큰 뉴스로 회자됐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 소년은 캐나다에도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알란 쿠르디 가족은 원래 캐나다에 난민 지위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올해 선거에서도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지난 10월 국민들은 결국 새 정부를 뽑았고, 보수당에서 제3당인 자유당으로 정권이 10년 만에 교체됐다. 그리고 새 정부는 2만5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케니 염 <허핑턴포스트 캐나다> 편집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