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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한마을에 100여 인종이 어우렁더우렁…“무슬림도 내 친구”

등록 2016-01-05 19:26수정 2016-01-06 09:01

[더불어 행복한 세상]

현장ㅣ‘다문화 평화마을’ 아스토리아
“이웃 같은 하나의 세계” 70여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있어 ‘아스토리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워 월드 네이버후드 차터스쿨’
“이웃 같은 하나의 세계” 70여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모여 있어 ‘아스토리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워 월드 네이버후드 차터스쿨’
급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얼굴색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피부색도 다양하다. 백인, 중남미계, 아시아계의 초등학생들이 너나없이 한데 모여 스스럼없이 부대끼고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이 색색의 조각을 이어놓은 듯 다채롭다.

비가 흩뿌리던 지난달 21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뉴욕시 퀸스 자치구의 아스토리아 지역에 위치한 ‘아워 월드 네이버후드 차터스쿨’을 안내하던 마크 크루샌트 개발부장은 “우리 학교는 유엔”이라며 싱긋 웃었다. 세계의 인종이 모두 모인다는 뉴욕, 그중에서도 소수인종이 밀집된 퀸스 자치구, 다시 그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산다는 아스토리아의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다웠다.

아스토리아 축소판 ‘차터스쿨’

학생들 국적만 70개국에 달해
학교에서 ‘존중’과 ‘조화’ 가르쳐

다문화 화합 비결은 ‘음식’

매년 5월 ‘음식박람회’ 파티 열어
불고기·카레 등 고유 음식 나눠
행사 통해 서로 다른 문화 이해

뉴욕 맨해튼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아스토리아에는 100여 인종이 섞여 산다. 그런데도 ‘조화로운’ 공동체를 꾸리며 산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성이 아스토리아의 자랑이라고 서슴없이 얘기한다.

아스토리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차터스쿨은 710명의 유치원·초·중등학생 가운데 백인 30%, 중남미계 30%, 아시아 20%, 흑인 10%, 기타 10%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을 국적별로 보면, 무려 70개국에 이른다. 아시아권만 해도 한국과 일본, 중국은 물론, 티베트 등 미국에서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나라들의 학생도 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학교 이름이 보여주듯이 ‘이웃 같은 하나의 세계’다. 인종적 화합을 위해 학교는 ‘음식을 통한 상호이해’를 강조한다. 학교가 매년 5월에 여는 ‘음식 박람회’에는 학부모들이 각국의 고유 음식을 준비해 와 파티를 연다. 음식을 통해 상대방이 누구인지, 친구의 국가는 어떠한지, 이웃의 생각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매달 학년별로 각자 음식을 준비해 저녁 파티를 하는 ‘포틀럭 디너’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행사다.

음식 교류와 함께 ‘필러’로 부르는, 삶의 기본 철학에 대한 교육도 한달에 한번씩 실시한다. 이번달에는 ‘존중’, 다음달에는 ‘우정’, 그다음달에는 ‘시민정신’ 등을 화두로 의미를 가르치고,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조화를 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존중 ‘차터스쿨’ 벽면에 붙여놓은 공자 말씀. “너 자신을 존중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도 너를 존중할 것이다.”
존중 ‘차터스쿨’ 벽면에 붙여놓은 공자 말씀. “너 자신을 존중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도 너를 존중할 것이다.”
학교 각층 벽면과 교실에 각 문화권의 정신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그림과 함께 붙여놓은 점도 이채롭다. “너 자신을 존중하라, 그러면 다른 사람도 너를 존중할 것이다”(공자)라든가, “세상에 감출 수 없는 세가지가 있다. 태양과 달, 그리고 진실이다”(붓다)라는 성인들의 말씀이 붙어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에 익숙한 아이들 사이에선 아랍이든, 티베트든, 대만이든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너의 얼굴색은 연탄과 똑같아’라고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말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물었다. 크루샌트 부장은 정색을 했다. 그는 “그런 사례가 있으면 학생을 불러 ‘왜 그렇게 얘기했느냐’고 물어본다. ‘다른 학생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얘기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고 얘기해야겠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아스토리아의 개방적 문화는 지난 12월13일과 20일 두차례에 걸쳐 상가 밀집지역인 스타인웨이 거리에서 진행된 크리스마스 행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날 산타클로스는 중동 음식점을 경영하는 무슬림이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상인 지원조직 ‘센트럴 아스토리아 지역개발 연합’의 마리 토니알리(67) 대표는 “이런 행사가 무슬림의 전통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기회를 주고, 그들은 미국적 전통을 포용한다. 이런 점이 우리의 이웃들을 멋지게 만든다”고 말했다.

아스토리아 도서관은 새로 온 이민자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곳이다. 도서관 책임자인 거스 체케니스는 “이민자들이 첫번째로 들르는 곳이 도서관”이라며 “일자리 알아봐주기, 세금 내는 법까지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스토리아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 이 지역엔 그리스와 이탈리계 주민들이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970년대부터 흑인과 중남미계, 아시아계들이 밀려들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하지만 일부 그리스나 이탈리아계 주민들이 외곽으로 이동하고, 더 이상 그들의 영역을 지킬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가 많아지자 마을은 되레 평화롭게 변했다.

인종별 커뮤니티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민병갑 퀸스칼리지 교수는 갈등 해소의 원인을 경제적인 근거에서 찾는다. 인종간 갈등은 주로 기존의 백인과 이주해온 이민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아스토리아에선 그리스계가 식당이라는 영역을 확실하게 장악하면서 자연스레 충돌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또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간 불화는 한 사업장 안에서 고용-피고용주 관계에 따른 차별 대우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아스토리아는 인종별·문화권별로 운영하는 상점들이 특색있게 구분돼 있고, 주로 같은 민족끼리 고용관계를 맺고 있어 갈등의 여지가 적었다는 것이다.

아스토리아를 관할하는 주민자치센터 격인 ‘퀸스 커뮤니티 보드1’의 책임자 플로렌스 쿨루리스는 “모든 인종적 배경과 상관없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특정 인종이 특별히 나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국적이나 문화적 유산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지만,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스토리아(뉴욕)/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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