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
대법 보수화 이끈 대표적 인물
현 보수 5명·진보성향 4명 구도
4대5로 바뀔 가능성
오바마 즉각 “후임 지명할 것”
공화 “새 대통령이 해야” 반격
대법 보수화 이끈 대표적 인물
현 보수 5명·진보성향 4명 구도
4대5로 바뀔 가능성
오바마 즉각 “후임 지명할 것”
공화 “새 대통령이 해야” 반격
미국 대법원의 대표적 보수 성향 대법관인 앤터닌 스캘리아가 13일 타계해, 후임을 놓고 미국 정가가 들썩이고 있다.
스캘리아 대법관은 웨스트 텍사스에 수렵 여행을 갔다가 이날 새벽 잠을 자던 도중에 숨졌다. 향년 79. 스캘리아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어, 현직 대법관 중 가장 오래 재직하면서 미 대법원의 보수화를 이끈 인물이었다. 그의 타계로 현재 보수 5명, 진보 성향 4명의 대법관 구도가 바뀔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 정가는 그의 후임 지명을 놓고 샅바 싸움에 들어가고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리처드 닉슨 행정부 때 공화당 진영에 들어가, 제럴드 포드 행정부의 법무차관 등을 지냈다. 그는 워싱턴 컬럼비아특별구의 항소법원 판사로 근무하다가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이탈리아계로서는 처음으로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를 포함해 모두 3명의 대법관을 보수적 인사로 임명해, 대법원의 이념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그는 미국 헌법을 쓰여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전주의’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판사였다. 원전주의는 미국 보수진영의 법철학으로 헌법은 고정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시대에 따라서 바뀌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그는 이런 원칙에 따라 2008년 ‘워싱턴 컬럼비아특별구 대 헬러’ 사건에서 개인의 총기 소유를 인정한 유명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워싱턴 시정부가 공공의 안전을 위해 시민들의 총기 소유를 제한한 조처를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는 기업 이익의 옹호자였고, 사형제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오바마 행정부의 건강보험개혁법에 위헌 의견을 내는 등 오바마 행정부의 진보적 정책에 번번이 제동을 걸어왔다. 현란하면서도 유머 있는 판결문으로도 유명해, 언어 연금술사라는 평판도 얻었다.
워싱턴에선 즉각 후임 지명을 놓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골프를 치던 도중 그의 타계 소식을 듣고는 애도를 표한 뒤 즉각 “적절한 시기에 후임자를 지명하는 나의 헌법적 책임들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1개월 남은 임기 중에 후임자를 지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런 의지 표명은 지난 30여년 가까이 보수 성향을 보여온 대법원의 이념 지형을 자신이 바꾸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이미 2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을 임명한 바 있다. 스캘리아의 후임자를 임명할 경우, 레이건에 이어 3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레이건이 대법원의 보수화를 이끌었다면, 오바마는 대법원의 진보화를 이끈 대통령이 된다.
미국 상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미국인들은 차기 대법관을 선정하는 데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우리가 새 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빈자리는 채워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오는 11월 뽑히는 새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를 상원에서 인준한다. 현재 100명의 상원의원 중 54명을 점하는 공화당은 오바마의 대법관 지명을 저지할 수도 있으나, 대선 과정에서의 역풍도 고려해야 한다. 여성이자 소수민족계인 소토마요르, 케이건 등을 후보로 내놓아서 공화당의 저항을 피해간 오바마 대통령 역시 이번에도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한다.
<미국 대법관 이야기>의 저자인 최승재 변호사는 “현재 대법원에 이민법 개혁 등 중요한 쟁점들이 다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자기들과 입장을 같이하는 확실한 한 표를 잃게 된 셈”이라며 “결국 오바마가 공화당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서영지 기자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