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폭탄 테러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통령의 수사방해 의혹을 제기하다가 숨진 채 발견된 검사가 살해당했다는 사법당국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애초 검사가 자살했다는 당국의 발표를 뒤집는 것이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형사항소법원의 리카르도 사엔스 검사는 25일(현지시각) “현재까지의 증거는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등 외신이 보도했다. 리카르도 검사는 니스만 검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지기 전 누군가에 의해 구타당한 흔적이 있으며, 시신이 옮겨지면서 범죄 현장이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황이 있다고 했다. 또 휴대전화와 컴퓨터 안의 데이터가 모두 삭제됐으며, 범죄 현장이 깨끗하게 치워져 아무런 지문도 발견되지 않은 점도 니스만 검사가 타살됐다는 정황을 뒷받침한다고 했다.
니스만 검사는 199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MIA) 건물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을 조사하다 지난해 1월18일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는 이란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가 테러를 일으켰다면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무장관 등이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관계자들에 대한 수배령 철회를 시도하는 등 수사를 방해해 왔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니스만 검사는 비공개 청문회 출석을 불과 하루 앞둔 날 자택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으며, 쓰레기통에서는 키르치네르 대통령의 체포영장 초안이 찢겨진 채 발견돼 타살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사건 초기 사법당국은 주검을 부검한 결과 저항의 흔적이 없고, 가까운 거리에서 총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자살로 결론지었다. 이후 정확한 사인 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졌지만 최근까지도 지방법원은 니스만 검사가 살해당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옮겨달라는 유족의 신청을 기각했다.
니스만 검사의 사인 규명 작업은 지난해 12월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 뒤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대선 유세 기간 동안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약속했으며, 지난달 유족들을 만나서도 이 약속을 재확인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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