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 연합뉴스
수석장관 제안 수락…대통령 퇴임 후 5년만에 정계 복귀
부패 혐의 기소 비껴가기 포석…취임 뒤 정국 수습 나설 것
부패 혐의 기소 비껴가기 포석…취임 뒤 정국 수습 나설 것
브라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었던 룰라가 다시 돌아왔다. 룰라가 사실상 현 대통령을 대신해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에서의 보혁 대결이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16일 수석장관으로 다시 정계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만나 그로부터 제안된 수석장관 임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룰라가 2010년 말 대통령 퇴임 이후 5년 만에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것이다.
그의 정계 복귀는 자신을 향해 옥죄오는 검찰의 기소를 피하고, 위기에 빠진 호세프 정부를 구하기 위한 포석이다. 이는 최근 브라질에서 격화되는 보혁 대결의 과정에서 이뤄졌다. 호세프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 등으로 야권으로부터 탄핵소추를 위협받고 있고, 룰라 역시 부패 혐의로 기소 위기에 처해있다. 최근에는 대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집권 노동자당 등 여권 쪽은 진보적인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보수 세력들의 기도이며, 특히 룰라에 대한 기소 시도는 노동자당의 상징적 인물을 욕보이려는 의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브라질 행정부처를 총괄하는 수석장관은 정무장관과 함께 국정의 두 축이다. 수석장관은 정부 부처 간 정책 조율과 정부-의회 관계 중재, 정부-시민·사회단체 간 통로 역할 등을 수행한다. 수석장관으로 연방 각료에 임명된 룰라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의 수사에서 면책될 수 있다. 브라질에서 연방정부 각료는 주 검찰의 수사나 지역 연방법원 판사의 재판으로부터 면책되고 연방검찰의 수사와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주관하는 재판만 받는 특권을 누린다. 룰라는 남부 파라나 주 연방법원의 세르지우 모루 판사의 결정에 따라 최근 부패 혐의로 연방경찰에 강제구인돼 조사를 받았다. 이어 상파울루 주 검찰은 법원에 룰라에 대한 예방적 구금을 요청한 바 있다.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를 수석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며 “우리 정부에서 룰라의 가담은 정부를 강화할 것이다”고 밝혔다. 호세프 대통령은 “정부가 강화되는 것을 원치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야권이 룰라를 정치적으로 매장시키려 한다고 시사했다.
집권 노동자당(PT)의 후이 파우카웅 대표는 룰라를 ‘희망의 장관’으로 표현했다. 그는 수석장관 취임식이 오는 22일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당의 아폰소 플로렌시 연방하원 원내대표는 “룰라의 수석장관 임명은 브라질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공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는 호세프 대통령으로부터 내각 운영 등에 관해 폭넓은 자율권을 약속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장관에 취임하면 연립정권 참여 정당 등으로부터 불만을 사온 각료를 교체하는 등 정국 수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룰라의 복귀는 사실상 현재 이름뿐인 대통령 호세프를 실질적으로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정치분석가들은 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룰라는 과거에 비해 지지도가 떨어졌지만, 오는 2018년 대선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등 여전히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우드로윌슨국제센터의 브라질연구소장 파울로 소테로는 “이 선택은 실질 권력의 이동을 뜻한다”고 말했다.
룰라의 정치적 카리스마와 그가 재임 시절 보여준 능란한 내각 운영 등 브라질 정치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는 현재 동요하는 집권당 의원들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특히 룰라는 연립정권에 참가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브라질민주운동당은 호세프 정부와의 관계를 끊고 그에 대한 탄핵소추에 참가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브라질민주운동당의 헤난 칼례이루스 상원의장은 “룰라가 수석장관을 맡으면 정부와 의회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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