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 AFT 연합뉴스
룰라가 돌아왔다.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68)은 16일 브라질 집권 노동자당 창설자이자 자신의 정치적 멘토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70)을 수석장관으로 임명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전했다. 2010년 두번째 임기를 마치고 정계를 떠났던 룰라 전 대통령이 5년여 만에 브라질 정치의 핵심으로 들어온 것이다.
룰라가 수석장관직을 받아들인 것은 부패 혐의에 따른 기소를 피하고 의회의 탄핵 위기에 몰린 호세프 대통령을 구하며 노동자당의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복합적인 포석으로 풀이된다. 최근 상파울루 지방 검찰은 룰라 전 대통령을 재임중 한 건설사로부터 아파트를 제공받고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로 조사한 뒤 법원에 기소를 요청했다. 또 룰라의 후광으로 연임에 성공한 호세프 대통령은 국영은행의 자금을 재정적자 확충에 전용했다는 이유로 의회의 탄핵 위기에 놓였다. 브라질에서 연방정부의 장관을 비롯한 고위직에 대한 기소와 재판은 연방 대법원만 할 수 있는데, 통상 몇 년씩이 걸린다. 사실상 고위직 관리들의 재임중 면책특권인 셈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룰라가 다시 중앙정치의 최고 실세로 복귀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브라질 수석장관은 정부 부처간 정책 조율을 총괄하고 정부와 의회 관계를 조절하는 자리로, 내각제의 총리에 버금가는 핵심 요직이다. 룰라는 최근 부패 추문에 연루되면서 인기가 많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2018년 대선에서 3선 가능성이 높을만큼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 난관을 헤쳐가는 정치력과 협상력, 카리스마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분석가들은 룰라가 호세프 대통령의 자문을 맡으면서 사실상 대통령 역할을 대행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는다. 브라질 우드로윌슨센터의 파울루 소테로 센터장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번 선택은 실질적 권력 이동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브라질 야권은 물론 집권 노동자당과의 연립정권 탈퇴를 검토 중인 브라질민주운동당도 룰라의 입각을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안토니우 임바사이 하원의원은 “룰라의 입각은 자신의 유죄를 고백하고 브라질 사회를 욕보인 것이며,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의 공모자가 됐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룰라와 호세프는 자신들의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호세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룰라는 우리와 브라질을 돕는데 필요한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며 “룰라의 입각이 정부에 힘을 싣는다면, 그리고 그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16일 오후 브라질 남부 파라나 주 연방법원의 세르지우 모루 판사가 룰라와 호세프의 전화 통화를 감청한 자료를 언론에 흘리면서 이번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 또다른 불씨를 지폈다. 녹음 자료에 따르면 호세프 대통령은 룰라에게 “(장관 임명장을)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브라질 공보부는 즉각 성명을 내어 “개인간 대화를 감청하고 공개한 것은 공화국 대통령직에 대한 모욕으로, 강력히 비난한다”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