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6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메릭 갈런드(왼쪽)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장을 신임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의 반대에도 신임 연방 대법관을 지명했다. 공화당 쪽에서도 호평했던 판사를 지명함으로써, 미국 대법원의 이념 지형도를 진보 쪽으로 바꾸려는 그의 시도가 실현될지 주목된다.
오바마는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중도 성향의 메릭 갈랜드(63)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장을 지난달 숨진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연방대법원의 대표적 보수 성향 대법관이던 스캘리아 사망 뒤 공화당은 후임 대법관 지명은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공화당 지도부는 대법관 인준 절차를 거부하겠다고 말했으나, 공화당의 일부 상원의원들은 인준 청문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오바마는 갈랜드 판사에 대해 “미국의 가장 날카로운 법 정신을 가진 인물의 하나로 두루 평가되고 있으면서도 품위와 겸손, 조화, 공평, 탁월함으로 업무에 임했다”며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까지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며, 상원 역시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갈랜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회에 초청하지 않겠다며, 그의 지명을 위한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갈랜드 판사는 초당적인 신망을 받는 판사로 평가된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법무부에서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 테러 사건의 주임 검사로 일해 명성을 얻었다. 1997년 워싱턴항소법원 연방판사로 임명될 때 상원에서 찬성 76, 반대 23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오바마는 대법관 후보로 갈랜드뿐만 아니라 인도계인 스리 스리니바산(49) 판사, 진보적이고 흑인인 폴 왓포드 판사(48)를 고려했다. 오바마의 지지자들은 진보적인 소수민족계 판사를 지명해, 선거를 앞둔 공화당을 압박하고 민주당 핵심 지지계층을 견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그러나 백악관 쪽은 흠결없는 법적 신뢰를 지닌 지명자를 내세워 공화당의 반대가 정파적 이해에 기반한 것임을 부각시키려 한 것 같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유화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크 커크 등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갈랜드 판사와 만나거나, 이 문제를 놓고 오바마와 대화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갈랜드 판사는 중도 성향이나, 대법원을 50년 만에 가장 진보적인 성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신문은 법학자들이 분석한 그의 이념 수치를 다른 대법관과 비교하면, 소니아 소토마요르, 루스 긴스버그 대법관에 이어 3번째로 진보적으로 평가받는다고 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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