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뭐가 됐든 바뀌어야”
흑인 “짐꾼밖에 못 돼” 분통
흑인 “짐꾼밖에 못 돼” 분통
“내 나이 여든셋이오. 그동안 수많은 것을 봤지만 이런 광경을 보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소.” 뮤지션에서 은퇴한 알프레도 칼데론은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화제가 갑자기 스포츠에서 정치와 시사 문제로 바뀐 것도 그렇다.
수도 아바나의 중앙공원에는 야구장 3루를 가리키는 속어 ‘에스키나 칼리엔테’로 불리는 곳이 있다. 스페인어로 ‘뜨거운 구석’이란 뜻이다. 남자들은 매일 이곳에 모여 야구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 21일(현지시각),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는 야구에서 정치, 자유, 인종 문제, 그리고 반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동상이 굽어보는 광장에서 미국 대통령을 보게 된 기묘한 느낌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미국의 기자 앞에서 한 사람이 “언론의 자유를!” 하고 외치자, 다른 이가 “표현의 자유를!”이라고 맞받았다. ‘3루 구석’은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분위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바마의 쿠바 방문을 계기로 쿠바에선 그동안 막혀 있던 민초들의 갈망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모습이다. 자영업자인 앙헬 마투렐은 “우린 변화를 원해요. 변화, 변화, 뭐가 됐든 변화를. 기다리는 데 지쳤습니다”라고 말했다. 흑인인 마누엘 발리에르 피게로아는 쿠바 흑인의 열악한 처지에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은 흑인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미국인들은 인종차별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댄스 경연대회에서도 하얀 피부에 밝은 색깔 머리의 여성 파트너를 고릅니다. 흑인들은 호텔 문지기나 짐꾼밖에 못해요. 내가 진실을 말하면 총 맞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진실’이라는 총알로 나를 죽이라지!”
비슷한 시각,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쿠바 출신자들도 모국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다. 15살 때 건너온 카를로스 산체스(50)는 “모든 변화는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뭐든 해보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면서도 “하지만 사람들이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조무사 바르바라 곤살레스(54)는 가족의 절반이 미국에, 나머지 절반은 쿠바에 사는 이산가족이다. 그는 “이제 쿠바 국민도 다른 세상, 다른 삶의 방식을 볼 수 있게 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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