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방식 정당’ 만장일치 판결
미국에서 ‘유권자 수’가 아닌 ‘인구 수’를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현행 방식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미 연방대법원은 4일 각 주가 선거구를 획정할 때 유권자 수가 아닌,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할 수 있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고 <뉴욕 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미 선거제도에서 ‘1인 1표’라는 기본원칙의 의미를 최고 법원이 재확인한 것이다.
이번 소송은 보수 성향이 강한 텍사스주의 일부 시민들이 현행 ‘인구 수’ 기준 선거구 획정방식을 ‘유권자 수’ 기준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며 제기한 것이다. 이 소송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인구 수 기준 선거구는 투표권이 없는 이주자나 불법 체류자, 미성년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 지역의 투표권이 더 큰 힘을 갖게 되는데, 이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반면, 유권자 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도시 지역보다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농촌 지역 투표권의 가치가 커지게 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각 주의 유권자 수 기준 선거구 재편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하진 않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리처드 헤슨 교수는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한 판단)를 다음 기회로 미뤘으며, 따라서 이번 판결이 민주당의 승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이 현행 제도 유지일 뿐 달라진 건 없다는 뜻이다. 현재 미 선거구는 실제 거주자 수를 토대로 10년마다 새로 획정되고 있다.
이번 소송에선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두 가지 이론이 충돌했다. 하나는 ‘평등한 대표성’으로, 주민이 유권자든 아니든 똑같은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투표권이라는 실질적 정치력을 지닌 주민이 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판결 뒤 대법원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투표권이 없는 이들도 여러 정책 논쟁에 이해관계가 크다. 예컨대 공교육 체계는 어린이뿐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며, 공공복리 같은 헌법적 서비스를 누리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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