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5월 무하마드 알리가 미국 메인주 루이스턴에서 치러진 소니 리스턴과의 재대결에서 1회 케이오(KO) 승을 거둔 뒤, 링에 쓰러진 상대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다. 한 해 전 알리는 리스턴에게 세계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을 빼앗은 시합 직전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는 말을 했다. AP 연합뉴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던 세기의 복서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갔다. 그는 이제 수십억 마리의 나비가 되어 세계인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미국의 전 세계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가 3일 밤 9시10분(현지시각)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고 가족 대변인 밥 거넬이 발표했다. 향년 74. 거넬 대변인은 “알리가 30년이 넘도록 파킨슨병과 투병해왔으며,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알리가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 4월9일 피닉스에서 열린 파킨슨병 환자 돕기 기금 마련 행사에 참석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알리의 딸 해나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으며, 가족들은 강했던 그의 손을 맞잡고, 포옹하고, 키스했으며, 이슬람 기도를 낭송하며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고 전했다. 해나는 또 “자녀들이 의연하려 애썼으며, 몇몇은 아버지의 귀에 대고 ‘이제 떠나가도 좋아요. 우린 괜찮아요, 사랑하고 감사해요. 이제 신께 돌아갈 수 있어요’라고 속삭였다”고 밝혔다. 알리의 또다른 딸 메리엄도 “정말로 가슴 아프지만, 이제 아버지가 더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니 행복하다. 그는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는 말로 슬픔을 다독였다.
알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삶을 기리는 추모 분위기가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옳은 일을 위해 싸운 사람이었다. 그가 링 밖에서 했던 싸움은 좌·우파 모두에게 공격받았지만, 그의 승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미국에 익숙해지는 데 기여했다”고 추모했다. 1974년 ‘킨샤사의 기적’으로 알려진 세기의 대결에서 알리에게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빼앗겼던 ‘맞수’ 조지 포먼은 “알리와 프레이저, 나는 한몸이었다. 내 몸의 일부가 떠나간 것 같다”는 말로 비통함을 표현했다.
알리의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은 9~10일 치러질 알리의 장례식과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루이빌 경찰은 알리의 가족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켄터키주 루이빌로 알리의 유해를 옮기는 행렬을 에스코트할 계획이다. 루이빌의 그렉 피셔 시장은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에 소속됐지만, 그의 고향은 한곳뿐이다”며 최고의 예우를 갖출 것임을 내비쳤다.
장례식은 9일 간단한 가족장을 치른 뒤 이튿날 공식 예식과 추모행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유족들이 밝혔다. 추모식은 알리의 생전 종교였던 이슬람 전통에 따라 이맘(무슬림 공동체 지도자)이 행사를 이끈다. <에이피>(AP) 통신은 5일 알리의 숨결이 깃든 루이빌 곳곳에는 벌써부터 추모객들이 놓아둔 꽃다발과 권투 글러브들이 쌓이고 있다고 전했다.
알리는 인종차별이 노골적이던 1942년 남부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다. 12살 때 아끼던 자전거를 도난당하고 씩씩거리다가 담당 경찰의 권유로 권투를 시작했다. 천부적 재능에 힘입어 18살이던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복싱 영웅이 된 뒤로도 ‘검둥이’라는 이유로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데 충격을 받고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린 뒤 프로로 전향했다.
알리는 1960년대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하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링 바깥으로도 발길을 넓혀갔다. 그가 ‘노예의 이름을 버리겠다’며 자기 이름을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X)를 본따 ‘캐시어스 엑스’로 바꾼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 뒤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캐시어스는 ‘무하마드 알리’로 가듭났다. ‘영웅’이란 찬사와 ‘반역자’라는 비난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알리는 링 안에선 무적의 복서였고, 링 밖에선 신념의 투사였다. 39살이던 1981년 통산 전적 61전 56승 5패로 은퇴했으나, 3년만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알리는 기나긴 투병생활 중에도 민권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인권운동가 재시 잭슨 목사는 4일 <시엔엔>(CNN)에 “마치내 알리는 비난 받던 자에서 존경받는 이로 삶을 마감했다”고 돌이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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