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종갈등과 총기 문제가 폭발 직전의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7일(현지시각) 댈러스에서 백인 경찰들의 흑인 용의자 사살에 항의하는 집회 도중에 경찰들이 조준저격당한 사건은 인종갈등과 총기 문제가 복합된 최악의 사건이다. 미국에서 경찰이 총기를 맞고 숨지는 사건은 왕왕 일어나지만 이처럼 계획적인 조준저격으로 5명이나 숨진 것은 근래 들어 처음이다. 특히 이 사건이 최근 잇따른 백인 경찰들에 의한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에 따른 인종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충격을 더한다.
사건 직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네소타 세인트폴과 루이지애나 배턴루지에서 일어난 두 건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을 개탄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경찰들이 직면하는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법 집행에서의 인종적 차별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사건은 2014년 8월9일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 대런 윌슨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 뒤 벌어진 전국적 대규모 소요사태 이후 악화된 법 집행 과정에서의 인종차별 문제에 뿌리를 둔다. 당시 퍼거슨에서는 이 사건에 항의하는 소요가 계속됐지만, 지방검찰은 3개월 뒤 윌슨을 불기소 처분했다. 이는 퍼거슨에서 대규모 소요사태를 불러 주방위군이 배치됐고, 항의 시위와 소요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퍼거슨 사건 이후에도 뉴욕 스탠튼아일랜드, 볼티모어, 클리블랜드, 노스찰스턴 등에서도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이 계속됐다. 미국은 2014~2015년 내내 이런 사건들로 큰 사회 갈등과 홍역을 겪었다. 지난해까지 계속된 퍼거슨 사건과 일련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 여파가 여전한데도 지난 5일 배턴루지, 6일 세인트폴에서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특히 배턴루지에서 숨진 흑인 올턴 스털링(37)은 경찰에 제압당한 뒤에도 수차례 총격을 맞고 죽어가는 장면이 주변 목격자들에 의해 스마트폰으로 녹화돼 공개됐고, 세인트폴에서 숨진 흑인 필랜도 캐스틸도 죽어가는 장면이 여자친구에 의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면서 미 전역에 충격의 정도를 더했다.
마크 데이턴 미네소타 주지사는 “만약 그 운전자가 백인이었다면, 그 행인이 백인이었다면, 이런 사건이 일어났겠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와 분노가 결국 댈러스에서 경찰에 대한 조직적인 저격으로 나타난 것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공화당 대선후보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인종주의 발언과 이에 공감하는 보수적 백인 중하류층의 점증하는 유색인종 혐오 정서가 더욱 증폭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할리우드 범죄영화에서나 보던, 경찰에 대한 매복 ‘스나이퍼’(저격수)들의 조직적 저격이다. 이는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더욱 거세지는 총기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총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를 규제하는 쪽으로 여론이 움직이는 듯했으나, 실제론 총기 소유 주창자들의 로비로 각 주에서는 더욱 총기 소지가 완화되어 왔다. 흑인 용의자들에 의한 경찰관 저격 사건은 오히려 정당방위 강화를 명목으로 한 총기규제 완화 목소리를 더 키울 수도 있다. 또 그동안 강화되어 오던 경찰의 총기 대응 정책도 경찰들의 대응력 강화를 명목으로 완화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종갈등의 격화가 전 미국을 덮칠 것이 분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건 단순히 흑인 문제, 히스패닉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려해야만 할 미국 문제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