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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배턴루지, 흑인 비폭력 민권운동의 고향이 흑백 내전의 전장터로

등록 2016-07-18 17:19수정 2016-07-18 21:53

배턴루지에서 경관 3명이 저격당해 숨져
댈러스 사건에 이어 퇴역 흑인 군인이 범행
불복종 비폭력의 60년대 민권운동과 달리 폭력적 저항운동 확산 우려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17일 경찰 3명을 저격해 숨지게 한 용의자 개빈 롱이 최근 유튜브에 당국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댈러스에서 일어난 경관 저격이 ‘정의’라고 규정했다.  유튜브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17일 경찰 3명을 저격해 숨지게 한 용의자 개빈 롱이 최근 유튜브에 당국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댈러스에서 일어난 경관 저격이 ‘정의’라고 규정했다. 유튜브
“총격 발생! 경관이 쓰러졌다! 총격 발생! 경관이 쓰러졌다!”

17일 오전 8시44분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의 경찰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절규는 미국 사회가 인종갈등의 위험스런 선을 넘나들고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앞서 8시40분 경찰 무전기에는 배턴루지의 에어라인 고속도로의 해먼드 에르 플라자 쇼핑센터 부근에 총을 멘 남자가 출현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즉각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검은 마스크와 군사용 위장복을 입은 이 남자는 화장용품 도매상 뒤로 몸을 숨겼다. 8시42분 총격이 보고됐고, 2분 뒤 경관이 저격당했다는 절규가 무전기에서 흘렀다. 8시46분 총을 든 남자가 인근 세차장 쪽으로 이동해 총을 계속 쐈다. 경찰들은 경찰차 뒤에 몸을 가리고 응사해 그를 사살했다. 경찰은 사살당한 용의자에게 폭탄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로봇을 보내 검색하고, 최종적으로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

용의자가 죽은 뒤에도 경찰의 확인 응사로 15분간 동안 이어진 총격전이 끝나자, 경찰인 몬트렐 잭슨(32)과 매튜 제럴드(41), 부보안관 브래드 개러폴라(45) 등 3명이 숨졌다. 경찰 3명이 부상했고, 이중 한명은 생명이 위독한 중상을 입었다.

사살당한 용의자는 이라크전 참전 퇴역 해병 개빈 롱(29). 그는 자신의 고향이자 집이 있는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약 1200㎞나 떨어진 배턴루지까지 와서 경관을 저격했다. 지난 5일 이곳 배턴루지에서 경찰이 편의점 밖에서 시디를 팔던 흑인 청년 앨턴 스털링을 사살한 이후 미국 전역에서 들끓고 있는 경찰의 인종주의적 법집행에 대한 항의와 분노, 이로 인한 인종갈등이 이 사건의 배경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총격을 난사한 에어라인 고속도로는 배턴루지에서 경관의 흑인 용의자 사살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는 곳이다. 지난 7일 텍사스 댈러스에서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퇴역 흑인 군인이 경찰을 매복 저격해 5명을 살해한 사건 이후 우려되던 유사 범죄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롱은 댈러스 경찰 저격사건과 관련해 유튜브에 “나는 경찰을 죽인 형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겠다. 당신들은 내가 말하는 것을 알 것이다. 그건 정의이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온라인에 올린 여러 포스트에서 최근의 인종차별과 갈등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지금은 평화의 시기이나 전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평화를 원할 때 전쟁을 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알겠지?” “단순한 시위로는 결코 통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롱은 2005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5년간 해병으로 근무하다가 병장으로 예편했다. 데이터 네트워크 기술병으로 복무한 그는 2008년에 이라크에 파병되기도 했다. 그는 선행 메달을 받는 등 모범적인 군인이었다. 캔자스시티의 그의 집에서 <워싱턴 포스트> 기자와 만난 사촌은 그가 아주 영리하고 “사람들을 위한 일들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할말을 잃었다. 롱이 배턴루지에 간 것은 사건 당일인 생일을 즐기고, 자신의 최근 저서 판매를 위한 것이라고 가족들은 전했다. 롱은 최근 흑인으로서의 영적인 재탄생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밝힌 저서를 출간했다. 미국 흑인들의 고향인 아프리카 대륙 여행 등에서 느낀 영적인 경험을 적은 책이다.

댈러스 경찰 저격 사건의 용의자 마이카 존슨이나, 배턴루지 경찰 저격 사건의 용의자 롱은 모두 ‘외로운 공격자’들이었다. 서방에서 일어난 이슬람주의 테러범의 다수가 서방에서 자라며 무슬림 차별에 대한 분노심을 키운 ‘외로운 늑대’들인 것과 비슷하다. 이 ‘외로운 늑대’들이 이슬람국가(IS) 등과 연계되며 ‘늑대 무리’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사회 내의 ‘외로운 공격자’ 흑인이 ‘공격자 무리’로 조직화, 세력화될 우려도 낳는다.

1955년 12월1일 앨라배마 몽고메리에서 흑인 민권운동 여성 지도자 로자 파크스가 공중버스에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면서 미국의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은 폭발했다. 로자 파크스 사건이 나기 2년6개월 전에 배턴루지에서는 흑인 주민들의 ‘버스 승차 보이코트 운동’이 벌어졌다. 버스 안에서 흑인들은 백인에게 무조건 좌석을 양보해야 하는 관행에 항의하는 이 운동은 8일간 계속됐다. 흑인들의 승리로 끝난 이 운동은 역사학자들에게 흑인 민권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은 비폭력 불복종 운동으로 미국 사회를 한단계 진보시켰다. 63년이 흐른 현재 미국은 또다시 흑백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60년대와 차이가 있다면, 비폭력 불복종 운동이 아니라 폭력적 항의와 공격이 점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턴루지의 1950년대 버스 보이코트 운동과 현재의 경관 저격 사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950년대라면 상상할 수도 없었던 ‘흑인 출신의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이날 “같은 국민으로서 우리는 법집행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크고 명확히 말해야 한다”며 “모든 사람들이 지금 당장 이 나라를 분열시키기 보다는 단결시키는 말과 행동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현실은 지금 분열로 가고 있음을 배턴루지가 증언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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