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빌니우스의 한 술집 벽에 지난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가 키스하는 벽화가 그려졌다. 트럼프가 높이 평가하는 푸틴의 러시아가 최근 민주당 전국위 이메일 사건을 폭로해 트럼프를 도우려 한다고 민주당은 주장하고 있다. 빌니우스/AFP 연합뉴스
대선 후보 경선을 힐러리 클린턴에게 유리하게 진행시킨다는 내용의 미국 민주당 전국위 이메일 폭로 사건이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러시아가 배후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되자 25일 수사에 전격 착수했다. 연방수사국은 성명에서 “민주당 전국위의 사이버 침입을 수사중이며 그 문제의 성격과 범위 등을 결정할 것”이라며 “이러한 종류의 위협은 우리가 매우 심각하게 여기는 것으로 지속적으로 수사해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밝혔다.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지난 22일 전국위 지도부 인사 7명의 이메일 1만9522건을 폭로했다. 메일들은 클린턴 후보에게 유리하게 경선을 진행했다는 의혹을 자아냈다.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인 데비 와서먼 슐츠 전국위 의장이 사퇴했다. 클린턴 선거운동본부의 로비 무크는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를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이 주장은 곧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에 의해 뒷받침되면서 파문이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사이버보안 회사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한달 전부터 러시아 정부의 후원을 받는 해커 단체들이 민주당 전국위의 컴퓨터 네트워크에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이버 공격은 정치 정보 수집을 위한 훈련 정도로 취급됐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폭로가 있자,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한게 드러났고, 러시아와 서방 간 대립의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클레어 맥캐스킬 민주당 상원의원은 “빅데이터로 분석하면, 이 폭로는 러시아 컴퓨터를 통한 것임이 드러나고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지목한다”며 “러시아가 우리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접촉한 미국의 3개 사이버 보안회사들과 서방의 정보기관 관계자들도 러시아의 정보기관이 책임있다는 증거들이 나온다고 전했다.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침입자들은 러시아의 가장 은밀하고 정교한 사이버 첩보 단체들인 에이피티(APT)28과 29로 파악되는 도구와 기술, 행동 흔적 양태을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에이티피28과 29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부터 백악관까지 사이버 공격을 한 오랜 이력이 있다. 유럽의 한 정보기관 간부는 전국위 해킹은 풍부한 자원을 갖추고 서방의 정치 및 선거 과정에 직접 개입하려는 러시아의 사이버 전략에 딱 맞아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창설자인 줄리안 어산지는 미국 <엔비시>와 회견에서 그 자료들을 러시아로부터 얻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이메일들의 내용이지 누가 해킹을 했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전국위의 서버는 수년동안 보안 구멍이 있었다”며 “우리가 여러 출처들에서 얻어서 현재 공개한 자료들은 전문가들이 (러시아가 배후라고) 분석한 자료들과는 다른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를 돕기 위해 일어난 것이라고 민주당 쪽은 주장하며, 트럼프에 대한 정치공세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쪽은 터무니 없다는 반응이다. 크렘린과 밀접한 한 인사는 “대외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예측가능성이다”며 “트럼프는 정치 지도자로서 업적이 없고, 아무도 그가 당선된 뒤 어떻게 행동할지 알 수 없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러시아의 한 외교관도 “트럼프가 자신이 말한 것을 실행한다면, 사태는 정말로 위험하고 난장판이 될것이다”며 이번 미국 대선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러시아에게는 좋지않다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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