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맞서 50여년 무장투쟁
마약거래·납치에 생계 기대
다수가 10대 오랜 게릴라 생활
우익 보복 가능성도 위험 요소
마약거래·납치에 생계 기대
다수가 10대 오랜 게릴라 생활
우익 보복 가능성도 위험 요소
그들은 처음에 한 손에는 카를 마르크스를, 다른 손에는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출발했다. 52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인질과 마약 거래를 움켜쥐고 있다.
콜롬비아 정부와 52년간 내전을 벌이다 지난 24일 평화협정에 합의한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대원들의 고립된 삶과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무장혁명군은 9월 말 정부와 평화협정에 공식 서명한 뒤 사회복귀를 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들의 정치참여를 위해 상·하원에 5석씩 모두 10자리를 향후 두 차례의 의원 임기 동안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평화협상 서명에 앞서 혁명군은 오는 9월13일부터 10차 대표자 회의를 외부인 참관하에 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의는 이들이 무기를 지닌 채 진행하는 마지막 회의가 될 전망이다.
혁명군 대원들의 사회복귀가 순탄히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혁명군은 1984년에도 정부와 휴전하고 합법적인 정치참여 등 사회복귀를 하려다 실패했다. 우익 민병대들의 잔인한 보복으로 혁명군 쪽 당의 대선 후보가 암살당하고, 당원 3000여명이 숨졌다.
콜롬비아는 오는 10월12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번 평화협정을 승인할 방침이지만, 콜롬비아의 뿌리 깊은 우익 세력들의 반발이 비등한다. 오랫동안 고립된 게릴라 생활을 해온 무장혁명군 대원들 역시 갈 곳이 없다. 지난 3월 혁명군의 초청을 받아서 이들의 게릴라 기지를 취재한 <뉴욕 타임스>는 몇몇 간부를 빼고는 대부분 대원들이 어린 시절부터 게릴라 기지에서 살아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만난 약 150명의 대원들은 10대 초반에 혁명군에 끌려왔거나, 우익 민병대의 학살을 피하려다 합류했다. 다수가 여전히 10대다. 이들은 기지에서 사령관의 승인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 생활을 영위한다.
기지 부사령관 루이시토는 “우리는 무기를 버리고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간부들은 정치참여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10대 대원들은 평화협상 뒤에도 기지에서 계속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혁명군이 더이상 마약 거래에 대한 세금 징수 등을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불안해했다.
이들은 사회에 복귀한 대원들의 삶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 것을 전해 들었다. 9살 때 혁명군에 의해 끌려온 멜리다(20)는 16살이 되어 부모를 한번 찾아갔다가 아버지의 신고로 갱생시설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딸을 신고해 상금을 받아 오토바이를 사려 했다. 멜리다는 갱생시설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없이 탈출을 시도하다 현재는 엄마가 되어 다시 사회 적응을 시도하고 있다. 사회에 나온 대부분의 혁명군 대원들은 우익 민병대에게 보복당하거나 다시 혁명군으로 복귀했다.
1964년에 창설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부패한 콜롬비아 우익 정부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혁명 자금 조달 명목으로 마약 거래와 인질 납치에 손을 댔다. 혁명군은 마약 거래 등으로 최대 1만7000명까지 세력이 커졌다가 1990년대 말 이후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콜롬비아 마약 단속 정책으로 약화돼 현재는 약 7000명의 대원이 정글에 고립 분산되어 있다. 콜롬비아의 산악 정글에서 혁명군들은 여전히 소총과 수류탄을 손에 쥐고 고단함과 불안, 희망이 교차하는 체 게바라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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