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상원은 31일(현지시각) 전체회의를 열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사진은 표결 결과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등 상원의원들. 브라질리아/AP 연합뉴스
31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의회 상원 회의장. 전광판에 ‘찬성 61-반대 20’이라는 수치가 표시되자 의석에선 환호와 울음 섞인 낙담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지우마 호세프(68)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투표가 가결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2월 의회가 호세프 대통령에 대해 재정회계법 위반 혐의로 탄핵 절차를 개시한 지 9개월, 2014년 10월 대선에서 호세프가 연임에 성공해 2기 정부를 꾸린 지 23개월 만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양심에 떳떳하다”며 탄핵의 부당성을 호소했지만 탄핵을 피하진 못했다. 이로써 2003년 금속노동자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1) 전 대통령 이래 14년째 계속된 브라질노동자당의 좌파 정부 시대도 일단 막을 내리게 됐다.
미셰우 테메르(75) 대통령 권한대행(브라질민주운동당)은 몇 시간 뒤 2018년 대선 때까지 잔여 임기를 승계하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테메르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투자 유치를 위한 정치적 안정을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등 외신들이 전했다. 호세프 쪽은 의회의 탄핵에 불복해 대법원에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다.
테메르 대통령은 취임선서 직후 오는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테메르는 “우리가 정치적, 법적으로 안정돼 있으며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걸 세계에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테메르 정부 앞에는 막대한 재정적자, 극심한 경제 불황, 국민의 정치 불신과 분열, 빈부 격차와 실업 등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과제들이 쌓여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테메르 정부를 보는 눈길은 싸늘하다. 지난 7월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 발표를 보면, 테메르 정부의 지지율은 14%였다. 반면, 응답자의 62%는 ‘조기 대선’을 희망했다.
‘부패’를 문제삼아 대통령을 탄핵한 테메르 정부와 의회 등 정치적 기득권 세력이 오히려 테메르보다 훨씬 더 ‘부패’하다는 점도 정권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원의 전체 의원 81명 중 49명이 돈 세탁, 부정축재, 부정선거 등 부패 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에 올라 있다고 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가 31일 ‘공식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앞서 지난 5월 테메르는 호세프 전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아 백인 중장년 남성 일색의 첫 내각을 꾸렸으나 불과 보름 새 3명의 장관이 부패 혐의로 옷을 벗었다.
의회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수도 브라질리아와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포르투알레그리 등 주요 도시에선 호세프 지지자 수백명이 탄핵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