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 한인 지지모임’에서 활동했던 낸시 김(왼쪽)과 문선영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두 후보 간의 미국 대선 대결이 박빙으로 치달으면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던 버니 샌더스 후보 지지층의 향배에 더욱 관심이 모이고 있다. 경선이 끝난 지금, 샌더스 지지층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인 샌더스 지지모임’ 행동가들을 통해 그 일단을 들여다봤다.
아주 오래전 사회부 경찰기자였을 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기자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황야의 무법자’ 같은 것”이라고. 한 ‘마을’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나면, 손 툭툭 털고 말없이 또 말 타고 다음 ‘마을’로 건너가는 것이라고.
기자란 족속은 지나간 ‘인물’이나 ‘사건’에는 매몰차리만치 관심이 없다. 더욱이 ‘막 지난’ 인물인 경우 더하다.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샌더스 한인 지지 모임’ 대표단 인터뷰를 위해 호텔을 나설 때,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버니 샌더스라…. 콘셉트를 잘못 잡았네’. 차라리 다운타운에 가 미국 거지들 인터뷰해 최근 시의 최대 이슈가 된 로스앤젤레스 홈리스 르포를 쓰거나, 롱비치 항구에 가 한진해운 사태 현장취재를 하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유에스뱅크 빌딩에 붙어 있는 70층 높이 ‘투명유리 슬라이드’를 타고 동영상 뉴스 내보내는 게 더 뉴스 가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어른거렸다.
그런데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우린(언론은) 샌더스를 떠나보냈지만, 이들은(샌더스 지지자) 아직 떠나지 못했구나’라는 것과, ‘오큐파이 월스트리트’-‘버락 오바마’, 그리고 ‘버니 샌더스’, 다음은 또 무엇일까? 언제쯤 이 바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로스앤젤레스의 한 카페에서 ‘샌더스 한인 지지 모임’을 이끈 문선영(44·파이낸스 플래너), 낸시 김(28·지역사회 활동가)을 만났다. 문씨는 유학·결혼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고, 낸시는 동포 2세로 필라델피아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참석했다. 한숨을 내쉬다가, 가끔 울먹이기도 했다. 낸시는 질문마다 어눌한 한국어로 천천히 시작하다 조금씩 흥분하더니 금세 말이 영어로 바뀌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버니 샌더스 대선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아시안아메리칸 모임’, ‘한인 모임’ 등에서 활동한 낸시 김.
경선 이후 늘어난 ‘데멕시트’
-샌더스 지지모임은 이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해야 되는 것 아닌가?
낸시 김 난 (이제) 질 스타인(녹색당 후보) 지지한다.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지지한 사람이 1300만명이나 된다. 우리가 샌더스를 지지한 이유는 그가 민주당 후보 중 힐러리보다 조금 더 낫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민주당 후보(의 경계)를 벗어났다. 버니 지지자들은 민주당원들이 아니다. 초당파적 모임이었다. 버니가 이길 거라 믿고 선거운동을 했다. 조금만 푸시하면 (경선에서) 이길 수 있겠다 생각했다.
-난 (국제부에 있으면서) 한 번도 샌더스가 이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문선영 왜?
-슈퍼대의원.
문 권위적인 민주당 지도부 때문에 졌다. 하지만 ‘대중의 힘’이 (버락 오바마 때처럼) 슈퍼대의원들을 움직일 거라고 본 거다.
낸시 필라델피아 (전당대회) 갈 때도 ‘가서 이길 거야’, 그 생각 갖고 갔다. <시엔엔>(CNN) 등이 이미 힐러리 이겼다고 할 때였다.
‘슈퍼대의원’이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전·현직 고위 핵심인사들로 구성된 당연직 대의원을 말한다. 이들은 당원대회(코커스)와 예비선거(프라이머리)에서 투표로 선출되는 일반 대의원들과 같이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 선출권을 갖는다. 민주당 경선에선 전체 대의원 4763명 중 712명, 15%가 슈퍼대의원이다. 슈퍼대의원은 대체로 당 주류(클린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샌더스로선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한 불공정 경쟁상태에서 출발한 셈이다.
-샌더스가 클린턴 지지를 선언했으니, 지지자들도 그 뜻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문 버니의 고뇌와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우린 샌더스를 지지하지만 (그의 말에 따라) 힐러리를 지지할 수는 없는, 묘한 상황이다. 우린 샌더스의 신념을 보고 선택했기에 그 신념을 포기할 수 없다. 지금 그래서 ‘회색지대’(혼란)가 생겼다. 버니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하아, 대선에서 누굴 찍어야 할지….
낸시 질 스타인. 나는 원래 인디펜던트(무당파)였다. 그런데 올해 민주당원으로 스위치(전환)했다. 단지 샌더스 때문에. 내가 아는 샌더스 지지자 대부분이 이전에 인디펜던트였다가 민주당원이 됐다. 그런데 (경선 이후) 모두 데멕시트(DemExit·민주당 이탈자)가 됐다. 민주당은 기업, 그리고 돈 가진 자들을 대표한다. 중산층은 지금 사라지는 중이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심각하다. 나는 (이제) 다시 인디펜던트로 돌아갈 것이다. 미국인들은 더이상 양당체제에 만족하지 않는다. 더 많은 정당, 다른 생각을 가진 열린 토론을 원한다. 버니는 잃었다. 하지만 진 건 아니다.
문 클린턴은 민주당의 보수 쪽 대표다. 슈퍼팩 등 월스트리트 등을 인정하고 거기서 정치자금을 받는다. 민주당 ‘극우’인 힐러리가 공화당과 결이 다른 트럼프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클린턴이 썩 맘에 들진 않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공포가 있지 않으냐?
문 나도 샌더스 이전엔 힐러리 지지했다. 첫 여성 대통령을 생각했다. 그런데 날 깨운 게 샌더스였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친구들 모인 것처럼 조직화되지 못했다. 힐러리 유세장에는 잘 짜인 운동원이 많고, 샌더스 유세장에는 그냥 환호하는 군중이 더 많았다. 샌더스 집회에 2만~3만명이 모였다. 힐러리 집회에는 수백명뿐이다.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다시 예전 민주당으로 돌아갈 수 없다.
당내 경선 샌더스 지지자 1300만
힐러리보다 좀 더 나아서가 아니라
민주당의 경계를 벗어났기에 지지
샌더스 지지한 신념은 버릴 수 없어
한인들도 먹고사는 문제 중요하나
샌더스 통해 미국 정치 눈뜨게 돼
미국은 더이상 양당체제 만족 못해
“버니는 잃었다, 하지만 진 건 아냐”
지난 7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No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라는 종이 팻말을 들고 있다. 샌더스 후보는 티피피 협정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가져온다는 이유로 줄곧 반대해왔고,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애초 티피피 협정에 찬성했다가 전당대회를 전후해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
지난 7월 미국 필라델피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낸시 김이 힐러리 클린턴을 뜻하는 ‘H’가 쓰여 있는 스티커를 입에 붙이고, 클린턴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
패배 선언할 때 우린 울기 시작했다
-위기가 닥치면 샌더스 지지층도 투표장 와서 힐러리 찍지 않겠느냐?
낸시 내가 (샌더스 지지자) 수백명 만났는데,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힐러리 지지로 바꾼 사람 없더라.
문 내 주변은 (이제 샌더스에서) 클린턴을 지지하면서도 아직 버니 지지 푯말을 안 내리고 있다. 집 마당에 샌더스, 힐러리 깃발 2개를 같이 꽂아놓은 사람이 많다.
20대인 낸시와 40대인 문선영씨 주변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정치에 관심이 있었나?
낸시 부모님이 타운에서 자영업을 하는데,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경제적 충격이 확 밀려왔다. 주변에서 파산하는 이들도 많았다. 매일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싱턴 가서 도대체 정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싱턴에 가서 인턴 활동을 했다. 그리고 미국 정치가 기업을 위할 뿐,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샌더스 지지모임에는 언제부터 나갔나?
낸시 올해 1월부터. 처음에는 ‘아시안아메리칸 버니 샌더스 그룹’에 속했다. 아시안아메리칸 대상으로 유권자 등록 권유하고, 폰뱅킹 정치자금 모금하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홍보하고 그랬다. 그리고 파생적으로 ‘코리안아메리칸 그룹’을 별도로 만들었다. (6월8일 캘리포니아 경선이 다가오자) 직장을 잠시 쉬고, 하루 10~15시간 자원봉사로 일했다. 저 같은 사람이 지역캠프에 몇 백, 몇 천명 활동했다. 샌더스 선거 캠프에서 지시한 건 없었고, 선거 관련 정보도 별반 없었다.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베벌리힐스 샌더스 모임’, ‘롱비치 샌더스 모임’ 등이 생겨나고, 페이스북에 ‘버니 샌더스 그룹’이 생겨나고, 한인·필리피노·히스패닉 등에서 ‘샌더스 그룹’이 생겨나고 그랬다.
-한인 샌더스 지지모임은 어떻게 조직됐나?
문 노조원이 7만명이나 되는 캘리포니아 간호사노조연맹이 샌더스 지지를 선언했다. 그때 한국계 노조 간부가 전화가 와서 (한인들을 상대로) 샌더스 지지 캠페인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한인들 몇 명이 모이고 정책·교육·홍보·행사진행·재정 등으로 역할을 나누고, 매주 한인 커뮤니티를 상대로 정책간담회를 열고, 피케팅을 하고, 설득하고, 에스엔에스 활동을 하고 그랬다. 한인들은 정치의 사각지대다. 한인들을 상대로 힐러리와 샌더스의 정책을 비교해 알렸다. 나중에 많은 한인들이 샌더스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한인 클린턴 지지모임’은 한인에 관심이 맞춰져 있는데, 두 사람은 계속 미국 정치 전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문 우리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한인들은 생존의 문제와 관련돼 있다. 저희는 다소 관념적이지만, 정치적으로 전체적 흐름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한인 클린턴 지지모임’ 쪽은 상대적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어떻게 도움이 될 건지를 더 생각한다. 클린턴 지지모임은 기존 민주당 지지세력이 주도하고 있고, 이들은 정치가로 본인들의 커리어 목표를 삼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의 표심에 민감하고 그래서 커뮤니티 지향적 사고를 하는 게 당연하다. 당연히 그런 분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은 커뮤니티 지역사회에 국한하지 않고 범이민자적, 범미국시민적 관점에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환경의 개혁에 주력하는거다.
-힐러리는 한국어 광고도 하고, 한인타운에도 많이 갔다.
문 한인들을 상대로 샌더스 캠페인을 하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한 정책이 뭐냐’고 묻는다. 그리고 ‘빌 클린턴은 한인 커뮤니티를 처음 방문한 대통령이다. 우리를 알아주는 사람은 힐러리다. 버니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지 않으냐. 한국어 광고도 안 만들고, 오지도 않고’. 당황스러웠다.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 이해는 하지만, 관심이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역 시의원을 뽑는 것도 아니고.
-필라델피아 전당대회는 어땠나?
낸시 1주일 동안 최선을 다했고, (샌더스가 패배를 선언할 때) 우린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 와우, 정치적 트라우마,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증에 시달렸다. 필라델피아에 간 많은 샌더스 지지층이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 하지만 혁명은 아직 진행중이고, 진행될 것이다. 2주 전 노스다코타의 송유관 반대 투쟁에 다녀왔다. 원주민(인디언) 보호구역에 송유관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려는 것을 지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가보니, 많은 ‘샌더스 피플’들이 와 있었다. 함께했다. 우린 ‘워킹 클래스 피플’들을 위한 자리에서 계속 싸울 것이다.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기업’이 아니라 ‘워킹 피플’들을 위해 힘쓰도록 계속 압박할 것이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LA 버니 샌더스 지지자 카페'에 ‘한인 샌더스 지지모임’이 샌더스 후보의 정책을 한글로 쓴 게시판을 세워놓았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
우리의 초첨은 ‘아메리칸 레볼루션’
-샌더스 때문에 클린턴의 정책이 진보 쪽으로 좀더 향했다. 샌더스가 졌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 샌더스 지지층들이 계속 남아 있으면 앞으로 미국 정치지형이 조금씩 진보 영역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낸시 예스. 샌더스가 지지자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초점은 ‘버니 샌더스’가 아니다, 이건 ‘아메리칸 레볼루션(혁명)’이다. 여러분들 모두가 변화를 만들 것이다. 당신들은 (미국 정치를) 지켜보고, 국회의원이 되고,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곳에서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고. (경선 패배 이후) ‘버니 피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다음 대통령은 (클린턴·트럼프) 누가 되든 원텀 프레지던트(one term president·단임 대통령)가 되도록 하겠다’고. 샌더스가 우리에게 끼친 아름다운 영향은 젊은 밀레니엄 세대의 정치의식을 깨운 것이다. 샌더스 지지모임을 가보면, 젊은이들 가운데 ‘샌더스 전에는 미국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이들이 많다. 샌더스는 첫째, 우리에게 숨겨진 것을 보게 만들었고, 우리 눈을 밝게 만들었다. 미국 정치가 어떤 건지, 그게 얼마나 더러운 건지 알게 만들었다. 그리고 희망을 줬다. 젊은 우리를 서로 연결하게 해줬다. 페이스북에 지역 버니 샌더스 그룹, 아직 있다. ‘롱비치 포 버니 샌더스’는 이제 ‘롱비치 포 프로그레스’, ‘롱비치 포 아워 레볼루션’ 형태로 이름을 바꿔 활동을 이어간다. 우린 앞으로 계속 푸시할 것이다.
지난 5월 메이데이 LA 거리행진에서 ‘아시안아메리칸 샌더스 지지모임’의 문선영씨가 샌더스 지지 푯말을 들고 있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
문선영씨는 한국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2001년 미국 유학을 와 영화이론을 공부했다. 영화진흥위원회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의 소장을 맡아 5년간 일했고, 2010년 독립영화 배급사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다. 이때 남편을 만나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미국에 살면서 한인 커뮤니티와 교류가 전혀 없다가 2014년 ‘세월호’ 이후 한인 커뮤니티를 찾아 활동을 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유가족 미국 초청 간담회도 주관했다. 그러다 2015년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 후보 선언을 하자, 지난 3월부터 ‘버니 샌더스 로스앤젤레스 한인지지위원회’ 초기 멤버로 참여해 활동을 하고 있다.
낸시 김은 동포 2세로,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자랐다. 유시 어바인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어린이 대상 비영리단체인 ‘매그놀리아 플레이스 패밀리 센터’에서 커뮤니티 오거나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권태호 기자 ho@hani.co.kr
지난 6월 버니 샌더스 로스앤젤레스 선거운동사무소에 걸린 한글 플래카드. ‘샌더스 한인 지지모임’이 만들어서 갖다 붙인 것이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낸시 김(가운데) 등 버니 샌더스 후보 지지자들이 로스앤젤레스 도심 코리아타운에서 샌더스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샌더스 지지모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