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의 무삭제 영문판 겉표지. 플리커
‘히틀러’는 되고 ‘셰익스피어’는 안 된다?
미국 텍사스주 교정당국의 교도소 도서 검열의 기준이 들쭉날쭉인데다 인종주의를 부추긴다는 논란까지 낳고 있다. 미국의 대다수 주들처럼 텍사스주 교정국도 지난 수십년간 수감자들이 읽을 수 있는 책과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을 선정해 왔다. 그런데 지난달 결정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 선집 <셰익스피어 소네트>가 겉표지에 누드 그림이 있다는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오른 반면,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은 허용됐다고 휴스턴에서 발간되는 주간 <휴스턴 프레스> 등 외신들이 전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 선집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1609년 판. 위키피디아
이번에 ‘금서’로 낙인 찍힌 책들에는 단테(1265~1321)의 <신곡> 중 ‘지옥’편, 퓰리처상을 받은 앨리스 워커의 <컬러 퍼플>(1982), 샐먼 루시디가 이슬람교를 비판한 <악마의 시>(1982) 등 문학적 가치가 높은 고전과 명작들이 포함됐다. 최신 도서로는 미국 소설가 댄 슬레이터가 멕시코 마약 밀반입 문제를 다룬 <늑대 소년들: 두 명의 미국 10대와 멕시코의 가장 위험한 마약 카르텔>도 금지됐다. “마리오는 픽업트럭들을 사서 번호판과 조명등들을 제거했다. 자동차 부품이 있던 자리에 마약을 감추려는 술책이었다”라는 단 두 문장 때문이었다고 한다. 슬레이터는 “(텍사스 교정당국의 도서 검열) 시스템이 너무 공격적이고 임의적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나치즘의 광풍으로 수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 그리고 미국의 과격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를 이끌었던 정치인 데이비드 듀크(공화당)의 <나의 각성> 등은 텍사스 교도소들의 금서 목록에서 빠졌다. 심지어 남미 좌파혁명 지도자 체 게바라의 저서 <게릴라 전쟁>(1961)도 수감자들이 읽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었다.
미국도서관협회의 ‘지적 자유’ 담당자인 데보라 스톤은 최근 영국 <가디언>에 “책을 읽는 수감자들은 행동 개선과 조속한 재활에 더 뛰어난 경향을 보이지만, 교정당국 관리들은 권한과 통제를 유지하는 것만 신경쓴다”고 꼬집었다. 미국 인권보호센터 사무국장이자 <교도소 법률 뉴스> 편집장인 폴 라이트는 “텍사스주 교도소에서 금지된 도서는 1만5000종이나 되는데 금서 목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한번 지정되면 해제되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교정국 소속의 한 교도소 외관. 위키피디아
미국 교도소들의 도서 검열의 핵심 기준은 198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다. 이에 따르면, 교도소는 폭동이나 불법무기 제조 등 교도소의 안녕과 관련된 경우에만 “합법적이고 중립적인” 기준에 의해 출판물의 검열 및 금서 결정이 인정된다고 <휴스턴 프레스>는 설명했다. 그밖의 모든 검열은 수정헌법이 보장한 ‘출판의 자유’와 수감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