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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암 치료 대신 여행 선택한 노마 할머니의 위대한 1년

등록 2016-10-03 16:14수정 2016-10-03 16:27

지난해 8월 미국 자동차 횡단 나선 노마 할머니
미국 32개 주, 75개 도시 방문
“오늘 놓아드렸습니다” 가족들, 1일 부고 알려
지난 8월30일 페이스북 페이지 ‘드라이빙 미스 노마’에 올라온 노마 할머니와 반려견 링고의 모습.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8월30일 페이스북 페이지 ‘드라이빙 미스 노마’에 올라온 노마 할머니와 반려견 링고의 모습.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진짜 크다!”

그랜드캐니언을 본 노마 할머니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하루 종일 사우스림 주변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지난해 11월8일,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할머니는 지질학에 관심이 많아요. 온천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네요.(7월28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매머드 핫스프링스)

할머니와 팀이 대서양 바닷물에 발가락을 담가봤어요.(8월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섬)

지난달 28일, 1년여간 미국 횡단 여행 소식을 올린 노마 바우어슈미트(91) 할머니의 페이스북 페이지 ‘드라이빙 미스 노마’(Driving Miss Norma)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안녕’이라 말하기 힘든 누군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앨런 밀른의 동화 ‘곰돌이 푸’에 등장한 이 대사와 함께 올라온 사진에서 노마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아들 팀을 보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 있는 할머니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누리꾼들은 “당신의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응원과 기도를 보낸다”는 글을 올리며 노마 할머니를 응원했다.

지난해 11월9일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반려견 링고.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해 11월9일 애리조나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반려견 링고.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해 7월, 미시간주 프레스크아일에 살던 노마 할머니는 정기검진을 받던 중 자신이 자궁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암 선고 2주 전 사랑하는 남편 레오 바우어슈미트가, 그보다 한 달 전에는 아들 랄프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수술,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 차근차근 자궁암의 치료 과정을 설명하던 의사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난 이제 90살이에요. 여행을 떠날 겁니다.”

그해 8월24일, 노마 할머니는 아들 팀과 며느리 래미 리들, 반려견 링고와 함께 미국 자동차 횡단 여행을 떠났다. 암 선고를 받은 지 5주만의 일이었다. 이후 13개월간 할머니와 가족들은 미국 32개주, 75개 도시를 방문했다. 주행거리만 2만1000㎞, 시간변경선을 9차례 넘나드는 여정이었다. 노마 할머니는 열기구를 타고 플로리다 상공을 날았고, 애리조나에서는 반려견 링고와 함께 그랜드캐니언을 굽어봤다. 사우스다코다에서는 차 안에 앉아 떼지어 지나가는 버팔로를 지켜봤고, 콜로라도주의 한 양조장에서는 수제 맥주를 맛봤다. 아들 팀은 “어머니께서 맥주를 마실 때마다, 우리가 독일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5월25일 미국 메인주의 한 캠핑장을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아들 팀의 모습.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5월25일 미국 메인주의 한 캠핑장을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아들 팀의 모습.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아들 내외가 할머니의 여행 소식과 사진을 올리기 위해 만든 페이스북 페이지 ‘드라이빙 미스 노마’가 알려지면서, 노마 할머니는 유명인사가 됐다. 미 해군, 미 프로농구(NBA) 애틀랜타 호크스 팀을 비롯해 미국 각지에서 모두 응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초대를 받았다.

리들은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45만여명의 팬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이야기가 그 대화를 시작하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마 할머니의 삶이 끝날 때까지’ 여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전한 가족들은 할머니의 뜻에 따라 여행 내내 인위적인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1일(현지시각), 노마 할머니의 가족은 페이스북에 “인생은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라는 시인의 말을 인용한 뒤 “오늘 우리는 놓아드렸습니다”라며 그의 부음을 알렸다. 올해 91살, 여행을 시작한 지 1년1개월만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는 노마 할머니는 ‘지금까지 여행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항상 똑같이 답했다.

“바로 이 곳입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지난 7월5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아들 팀.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지난 7월5일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를 방문한 노마 할머니와 아들 팀. ‘드라이빙 미스 노마’ 페이스북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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