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미국 워싱턴 상원 의회에서 미치 매코널(가운데·켄터키) 공화당 원내대표가 다른 의원들에게 둘러싸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지난 8일 선거를 통해 미국 공화당은 행정부, 의회 상·하원을 모두 거머쥐었다.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에 정치 주도권을 빼앗긴 이후 두번째다. 공화당은 나아가 주지사와 주 의회에서도 민주당보다 우위다. 미국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공화당은 겉으론 축제 분위기이지만, 속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공화당이 최근 몇십년 동안 추구해온 보수 이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으로, 공화당의 기존 지형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공화당 안팎에 파편화된 형태로 존재하던 ‘트럼프주의자’들을 당 주요 세력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트럼프주의자들은 사회복지 축소 반대, 불법체류자 추방, 백인정체성 정치, 보호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한다. 공화당 주류의 전통적 보수이념과 많은 부분에서 반대된다. 트럼프주의자들은 공화당을 유럽의 극우민족주의 정당 스타일로 바꾸기를 원한다.
공화당 기성주류를 대표하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새롭게 단합한 공화당 정부의 새벽을 환영한다”며 “이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승리를 미국 국민들을 위한 실질적 진보로 바꾸는데 초점을 맞춘 정부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역시 선거 내내 불화를 겪던 라이언의 하원의장 재선에 동의하고, 주류지만 트럼프를 일관되게 지지했던 라인스 프리버스 전국위의장을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등 기성 주류들에 타협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관계에는 숙제가 산적해 있다. 트럼프가 취임 뒤 우선과제로 선정한 오바마 케어 개폐, 1조달러 규모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등에서 공통분모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공화당 보수진영은 전국민개보험 형태의 의료보험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확인했듯, 오바마 케어 일부분을 존속하는데 동의하고, 다른 형태의 전국민 의료보험에도 우호적 태도다. 트럼프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핵심으로 지목하는 1조달러의 사회간접자본 프로젝트는 작은 정부와 정부 지출 축소를 금과옥조로 숭배해온 기존 보수진영과 정면충돌하는 대목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혹은 폐지는 공화당 기성주류의 이익을 훼손한다.
이와 함께 공화당 주류 안에서도 트럼프를 가장 반대하는 그룹이 외교안보 인사들이다. 이들은 선거과정에서 집단적으로 트럼프 반대 성명을 냈다. 이들은 나토 등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재조정하고,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을 줄이고, 러시아와 관계개선을 주장하는 트럼프의 주장들에 대해 미국의 세계 패권을 허무는 가장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보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고문을 지낸 엘리엇 코헨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공화당내 외교안보 인사들에게 트럼프가 당선된 이상 그에게 협력하라고 조언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그는 “트럼프 인수위와 말해보고 나서, 내 권고를 철회한다. 그들은 거만하고, 화를 내며 ‘당신들은 패배했다’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최핵심 각료인 국무장관 후보로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네오콘 인사 존 볼턴 전 유엔대사 등 함량미달이거나 극단적 인사들만이 거론되는 이유다. 트럼프 인수위는 아직 한 명의 각료도 확정하지 못했다.
존 베이너 전 하원의장은 <시엔비시>(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의제에 관해 “그는 거의 공화당원이 아니다. 또 민주당원일 수 없다. 아무도 그가 무얼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트럼프는 취임 뒤 자신의 우선과제 수행에서 오히려 민주당 쪽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상원은 사회간접자본 지출, 무역협정 재협상 등에서 트럼프와 공조전략을 짜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민주당 쪽은 그동안 공화당 쪽이 저항하던 여러 의제들을 트럼프를 통해 수행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지배하는 의회는 당분간 감세, 보수적 연방대법관 지명, 규제완화 등에는 행보를 같이 하겠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책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알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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