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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대통령 탄핵, 닉슨과 클린턴의 다른 길

등록 2016-11-18 17:32수정 2016-11-19 11:24

워터게이트, 지퍼게이트 사건
측근 탓 돌리고, 거짓말, 수사방해 일관한 닉슨 사임
클린턴은 상원에서 부결, 대통령직 유지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폭로해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야’까지 이어간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박근혜 스캔들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보다 심각한 사건”이라는 평을 내놨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하야’ 촉구에 이은 ‘탄핵’ 주장이 잇따르는 가운데, 미국의 경우를 보면, 각각 의회로부터 탄핵 요구를 받았으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닉슨과 달리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둘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 논의가 실제로 진행된 경우는 앤드루 존슨(1868)과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1974)과 지퍼게이트로 위기에 몰렸던 빌 클린턴(1998) 등 3명이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면서 물러난 대통령은 닉슨이 유일하다. 사건 초기에는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으나, 스캔들 은폐와 잘못을 측근 탓으로만 돌리면서 거듭한 거짓말이 탄로나면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소속 정당인 공화당 등 보수파의 내부반발까지 불러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닉슨 대통령 재선을 위해 가동된 조직이 1972년 6월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게 발각되면서 시작됐다. 단순절도 사건으로 묻힐 뻔 했던 일을 <워싱턴 포스트>가 연방수사국(FBI) 내부고발자(딥 스로트·deep throat)의 증언을 통해 워터게이트 사건을 2년에 걸쳐 계속 추적보도했다. 닉슨은 파문이 커지자 처음에는 존 딘 백악관 고문 등 핵심 보좌관을 해임하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해임된 딘은 상원 워터게이트 조사위원회에서 백악관 집무실 대화 내용이 녹음돼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치발드 콕스 특별검사는 집무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나 닉슨은 이 요청을 거부하고 도리어 법무부장관에게 특검 해임을 명령했다. 법무부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고, 차관에게 명령하자 차관도 사임했다. 결국 송무차관을 장관 직무대행으로 임명해 기어이 특별검사를 해임했다.(1973년 10월, ‘토요일 밤의 학살’)

닉슨은 “나는 사기꾼(crook)이 아니다”고 강변했지만, 여론은 점점 악화됐다. 닉슨은 특검에 녹음 테이프를 제출했지만, 중요 내용이 삭제된 것이었다. 대법원이 미공개분도 제출하라고 판결하자. 74년 8월 미제출 테이프를 어쩔수 없이 제출했다. 이 테이프에 닉슨과 보좌관들이 사건 은폐를 위해 중앙정보국(CIA)을 움직이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 하원 법사위도 직권남용, 사법방해 혐의 등으로 탄핵 소추 개시 의결을 통과시킨 상태였다. 그래도 닉슨은 버티려 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되려면 하원 전체 과반수 찬성 뒤 상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 2의 유죄 판정을 받아야 한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었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닉슨의 탄핵 심판에서 유죄표를 던지겠다고 경고했다. 닉슨은 탄핵된다면 형사소추까지 받을 수 있었다. 결국 닉슨은 사임 요구를 받아들였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부통령은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닉슨을 사면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전 한때 60%를 넘었던 닉슨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져 하원 탄핵안 발의 당시에는 24%였다.

24년 뒤인 1998년 민주당 소속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다. 클린턴은 스캔들 초기 다른 재판에서 “르윈스키와 성적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는 르윈스키가 백악관 동료에게 ‘클린턴과 성적 관계가 있었다’고 말한 녹음 테이프를 입수해 클린턴의 거짓말을 밝혀냈다. 당시 의회도 닉슨 때처럼 여소야대였지만 야당이 상원 3분의 2까지 차지하진 못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하원에선 공화당 주도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지만 상원에선 민주당 의원들이 클린턴에 무죄표를 던져 탄핵안은 가결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민 사이에서도 클린턴에 대한 비판 여론은 있었지만, 닉슨 때와는 달리 ‘탄핵 사유’라는 의견은 적었다. 1998년 12월 하원의 탄핵 소추 결의 뒤 실시한 갤럽 조사를 보면, ‘탄핵 반대’ 68%, ‘탄핵 찬성’ 29%였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18일 “닉슨과 클린턴 탄핵은 매우 다른 사건”이라며 “닉슨은 (스캔들 자체가) 명백한 불법이었고 이후에도 계속 수사를 방해했지만, 클린턴은 도덕적 문제가 있었지 범죄행위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며 “클린턴 탄핵은 공화당 강경파가 클린턴을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벌인 측면이 강하다”고 비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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