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칠레 산티아고에 자리한 쿠바 대사관 한켠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을 추모하는 사진과 꽃이 놓여 있다. 산티아고/AP 연합뉴스
“그를 사랑했던 이들에겐 위대한 사람이었지만, 그를 미워했던 이들에겐 최악의 인물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26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한 카페에 있던 가르시엘라 마르티네스(55)는 카스트로의 사망을 슬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혁명 영웅이자 잔인한 독재자. 극단적 평가를 받는 카스트로의 타계를 두고 세계 각국의 반응도 엇갈렸다.
지난 50년간 쿠바와 관계 단절을 겪었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26일 카스트로의 타계 소식에 성명을 내어 “세계는 야만적인 독재자의 죽음을 목격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유산은 총살형과 절도, 상상하지 못할 고통, 가난,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부정이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교정상화를 통해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힘써온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인들에게 위로를 보내면서도, “역사는 그가 주변과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쿠바의 우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은 깊은 애도를 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보낸 조전에서 “카스트로는 위대한 국가지도자이자 한 시대의 상징”이라고 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조전을 보내 “사회주의 발전에 불후의 공헌을 했으며, 이 시대의 위대한 인물로 역사와 인민이 기억할 것”이라며 “중국 인민은 친밀한 동지이자 진실한 친구를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조전을 보내 “사회주의와 정의를 위한 반제자주 위업 수행에 특출한 공헌을 한 저명한 정치활동가”라고 평가했다.
과거 카스트로를 비판해온 유럽 국가들은 대체로 평가는 보류한 채 애도만 표하면서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유럽연합은 계속해서 쿠바와 굳건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 등도 성명을 통해 쿠바 정부와의 적극적인 협력을 시사했다.
쿠바 내부적으론 세대간 온도차가 감지된다. 50년간 쿠바를 통치해온 카스트로는 기성 세대에는 향수 짙은 지도자이지만, 2008년 정계를 은퇴해 젊은 세대엔 이미 과거 인물이다. 아바나의 디아스(31)라는 한 여성은 “청년들은 대부분 그의 죽음에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쿠바 간 수교가 재개되면서, 젊은층은 카스트로의 공산주의 가치를 지키기보단 자유로운 교역을 지지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쿠바 정부는 9일간의 애도 기간을 설정해 이 기간 동안 음악·공연 등의 행사를 전면 금지하고 모든 관청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한편, 쿠바 출신 반체제 망명 이민자와 후손이 많이 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리틀 아바나’는 환영 일색 등 축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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