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평화의 소녀상 환영식을 마친 뒤 10일(현지시각) 길원옥 할머니(앞줄 왼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10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칼바람 속에 모습을 드러낸 ‘평화의 소녀상’에는 하얀 털모자와 갈색과 흰색 털실로 짠 목도리가 둘러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13살의 어린 나이에 5년 동안 성노예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길원옥(89) 할머니는 “워싱턴에 온 평화의 소녀상이 영구적으로 발을 땅에 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100여명의 재외 동포들이 참가한 가운데, ‘내셔널 몰’ 안 야외공연장인 실번 시어터에서 열린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 환영식’에서 길 할머니는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하고, 우리 후손들은 우리와 같이 당하지 말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이곳 미국까지 왔다”고 밝혔다. 길 할머니는 이어 “전쟁에서 희생당한 우리 여성들을 잊지 말아 달라”며 “소녀상이 전쟁을 모르는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인권교육의 교과서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 안 야외공연장인 실번 시어터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공개된 평화의 소녀상.
이번 소녀상 환영식 개최에 적극 협조한 워싱턴 시 아시아·태평양 주민국의 데이비드 조 국장은 에스더 강 보좌관을 통한 대독사에서 “워싱턴 시는 다양성과 문화, 역사를 존중하는 도시”라며 “과거의 사건과 비극을 인정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국장은 이어 “평화의 소녀상은 과거 잘못을 되새기게 하고,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이 견뎌야 했던 역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소녀상은 인권의 상징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자는 우리의 약속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내셔널 몰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환영식에서 풍물패들이 소녀상을 돌며 풍물을 공연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 환영식'을 마친 뒤 일부 참석자들이 10일(현지시각)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소녀상은 워싱턴에 도착한 지 한달가량 됐지만, 영구적으로 설치할 곳을 아직 찾지 못해 이날 임시 제막식 형식으로 공개됐다. ‘워싱턴 소녀상 건립 추진위’는 소녀상의 영구 설치 장소를 찾기 위해 대학과 교회 등 워싱턴 내 주요기관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현숙 추진위 공동위원장은 “위안부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분들이 있어, 선뜻 건립하겠다고 나오는 곳이 없다”며 “내년 봄까지는 설치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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