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45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치고 나서 부인 멜라니아 여사, 막내아들 배런과 함께 거리 행진에 나섰다. (워싱턴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일성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다. 무역, 일자리, 국경, 외교관계 등에서 힘의 우위에 입각해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고히 밝힘으로써, 기존 질서의 대변혁을 예고했다.
트럼프는 20일 정오(한국시간 21일 오전 2시)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에 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란 주제의 연설을 통해 “수십년간 미국 산업의 희생으로 외국의 산업이 부유하게 됐다”며 “외국 군대에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군대는 고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정작 우리의 국경은 방어하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을 방어해줬다. 우리 산업이 황폐해지고 쇠락해지고 있는데 외국에 수십조 달러를 썼다”며 “우리는 우리의 부, 강인함, 자신감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데도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역, 이민, 국방 등에서 일방적으로 외국에 희생당해 미국이 쇠락했다는 논리로, 국수주의를 자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또, “수백만명의 미국인 노동자가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생각조차 없이 공장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고 떠났다”고 주장해, 개별 기업들을 상대로 한 국외 이전을 강력하게 막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런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오늘부터 새로운 비전이 우리의 땅을 지배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할 것”이라며 “무역, 세금, 이민, 외교 문제와 관련한 모든 결정은 미국 노동자와 가정이 혜택을 받도록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우리 물건을 만들고 우리 회사를 훔치며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은 외국의 파괴로부터 우리의 국경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는 위대한 번영과 강인함을 이끌 것”이라며 “일자리, 국경, 우리의 부, 꿈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간단한 두개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며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민을 고용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오랜 동맹을 강화하고 새로운 동맹을 형성할 것”이라면서도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우애와 친선을 추구하겠지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것은 모든 국가의 권리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일을 추진할 것”이라며 다시 한번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문명화한 세계를 규합해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즘을 지구 상에서 완전히 뿌리 뽑을 것”이라며 ‘이슬람국가’(IS) 격퇴가 외교정책의 최우선 정책 순위임을 확인했다.
그는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기득권으로 비난받언 워싱턴의 기성세력을 타파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는 “오늘 취임식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우리는 단순히 권력을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한 행정부에서 다른 행정부로 이양하는 것이 아니라 워싱턴(기득권)으로부터 국민에게 권력을 되려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워싱턴의 소규모 그룹이 정부의 혜택이라는 열매를 누리는 사이에 국민들이 그 부담을 졌다”며 “워싱턴은 번창했지만, 국민은 그 부를 공유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기성세력은 자신만을 보호했지, 시민은 보호하지 않다. 그들의 승리는 국민들의 승리가 아니었다”며 “모든 변화가 오늘 여기에서 당장 시작된다. 이 순간은 여러분의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7년 1월 20일은 국민이 다시 이 나라의 통치자가 된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그간 우리나라에서 잊혀진 남성과 여성은 더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는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 늘 불평만 하고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인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허하게 말만 하는 때는 끝났다. 이제 행동의 시간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 조직폭력, 마약 등을 언급한 뒤 “미국의 이런 ‘살육’은 오늘 여기에서 끝났다”며 “미국을 다시 강하게, 부유하게, 자랑스럽게,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며 “그렇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뭉치면, 아무도 미국을 막을 수 없다”며 단합을 호소했지만, 큰 울림은 없었다.
트럼프의 이날 연설은 미국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포장돼 있지만, 선거 때처럼 상당히 선동적이고 포퓰리즘적이다. 또한 미국의 이익을 위해 무역 보호주의와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 개별기업 압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밀어 부칠 것임을 다시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트럼프는 관례에 따라 백악관 블레어하우스(영빈관)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20일 오전 8시30분 부인 멜리니아 등 가족들과 함께 백악관 뒤편 세인트 존스 교회에서 예배를 하는 것으로 취임 당일 일정을 시작했다.
트럼프 가족은 예배를 마친 뒤 오전 9시30분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 가족과 함께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차를 마시며 마지막 신-구 권력 간 가족 회동을 가졌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안내하는 형식으로 의사당 앞 취임식장에 도착한 트럼프는 취임선서와 취임연설을 하는 것으로 공식적인 정권이양 행사를 마쳤다. 이어 트럼프는 군 의장대 사열, 축하 퍼레이드, 3곳의 무도회 행사 참석 등으로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첫날을 보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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