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49)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명한 뒤 그가 연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49) 콜로라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그의 인준이 의회를 통과하면 대법원도 정치적 성향이 보수 우위로 굳어져,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입법부는 물론 사법 분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황금 시간대인 저녁 8시에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고서치 후보자의 지명을 발표했다. 또 경쟁자였던 토머스 하디먼 펜실베이니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까지 워싱턴에 불러들여 마치 자신이 진행하던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견습생)를 재연하듯 막판까지 저울질하는 듯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고서치 후보자를 소개하며 “깜짝 놀랐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연방대법원은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앤터닌 스캘리아 전 대법관이 지난해 2월 숨진 이후 거의 1년 동안 비어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온건중도 성향의 메릭 갈랜드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장을 새 후보로 지명했지만, 공화당이 인준 청문회 개최 자체를 거부하며 인준이 무산됐다.
고서치는 보수의 거두로 불렸던 스캘리아 전 대법관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지명받은 뒤 소감 발표 형식의 연설에서 “‘법의 사자’인 스캘리아 전 대법관을 계승하게 돼 영광”이라며 “인준되면 미국의 법률과 헌법에 충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에 부정적이고,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에 비판적이며, 정부 규제에 대한 법적 검토를 옹호하는 등 강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연구결과를 인용해 그의 판결이나 입장이 보수적 대법관 5명 중에서도 두번째로 보수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현재 진보 4 대 보수 4인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쪽으로 기울게 된다. 고서치 판사는 49살로, 지난 25년간 지명된 대법관 가운데 가장 젊다. 대법관이 종신제임을 감안하면,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대법원에서 보수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선 확실한 우군을 확보하게 됐다. 트럼프의 반 이민·난민 행정명령 등에 대한 잇딴 위헌 소송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에서 트럼프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1년에 100~150건 정도의 심리를 하는데, 대부분 국가의 정책 결정 근거가 되는 법령들이 위헌 소지가 있는지를 심판하는 게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고서치는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의해 2006년 콜로라도주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받아 민주·공화의 초당적 지지로 임명됐지만, 이번 대법관 인준 과정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조항 때문에 고서치가 상원 인준을 통과하려면 의원 100명 가운데 6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화당 의원은 52명뿐이다.
그런데 오바마의 갈랜드 후보 지명에 대해 공화당이 청문회도 열지 않았던 것처럼, 민주당도 똑같이 앙갚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고서치 인준은 트럼프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실질적인 첫 격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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