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 앞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찬성하는 시위대(왼쪽)와 반대하는 시위대(오른쪽)가 서로를 바라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오 신이시여, 저는 정말 행복했어요.”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는 살 올리비아(32)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 소식을 들었을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호텔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우버택시 운전사로 부업을 뛰는 올리비아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이민자 후손이며 동성애자다. 이민자들도, 동성애자들도 트럼프의 지지층이 아니다. 그럼에도 올리비아가 트럼프를 지지하게 된 계기로 그는 지난해 6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발생한 펄스 나이트클럽 총기 테러를 꼽았다. 당시 총격을 가한 테러범인 오마르 마틴 역시 아프가니스탄 이민자 2세였다. “무슬림들은 동성애자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미국으로 온다고 해서, 미국의 가치를 습득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트럼프를 지지하는 차원에서 오른팔에 문신으로 트럼프의 얼굴을 새겼다는 올리비아는 “나 역시 테러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을 두고 국내외적으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 트럼프 지지층을 중심으로는 행정명령 찬성 여론이 더 높다고 <뉴욕 타임스>가 1일 전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지난 대선 기간에 약속했던 이민자 규제 공약을 지키는 조처이면서, 동시에 테러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애틀에 거주하는 백인 남성인 마이클 보어(35)는 2001년 9·11 테러를 회고하며 “사람들이 테러와 이민자, 무슬림에 대해 걱정하는 건 결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대부분의 국내 테러는 미국 태생의 시민에 의해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조처만으로도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민자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안감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미국 퀴니피액대학이 지난달 12일 미국 성인 8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테러 위험 지역 출신의 이민자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지하면 안 된다는 응답은 42%에 그쳤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정치심리학 교수인 필립 테틀록은 “트럼프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좌파적 가치를 공격하고 있다”며 “만약 좌파들이 이를 토대로 우파를 공격할 경우, 자신의 지지자들이 더욱 잘 뭉친다는 것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으로 인해 국내 여론이 둘로 쪼개지면서 극심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만을 만족시키면 과반 지지를 유지할 수 있고, 그러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전략적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트위터에서 “모든 사람이 (이슬람권 7개국 국민 입국) 금지냐 아니냐를 놓고 언쟁을 하는데, 마음대로 불러라. 이건 나쁜 의도를 가진 나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관련 정책 강행 의지를 거듭 밝혔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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