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8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새 대북 접근법을 만들겠다고 명확히 밝힌 것으로 8일(현지시각) 확인됐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특히 군사력과 외교 등 모든 옵션을 사실상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이른바 ‘전략적 인내’를 더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대북 정책 방향성에 따라 한반도 정세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틸러슨 장관은 미 상원 인준안 처리에 앞서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벤 카딘 상원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 자료에서 “인준이 되면, 북한이 이웃국가와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다수의 도전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접근법을 만들기 위해 유관기관 동료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틸러슨은 “선제적”이란 표현을 사용해, 현상유지 성격의 현 대북정책을 더이상 고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못박았다.
틸러슨은 새 대북정책 개발 필요성으로 “새로운 전략이 채택되지 않는다면 (북한이 제기하는) 도전은 계속 악화될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북한의 도전으로 △끊임없는 핵무기 개발과 미국 본토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탄도미사일 발사 추구 △억압 체제로 인한 인권 비극 △불안정을 확산하려는 계속된 불법 행동 △한반도를 휩쓸 수 있는 인도주의적인 위기 등을 꼽았다.
틸러슨은 “이런 우려를 해결할 새로운 전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사력을 통한 위협에서 외교적 해법에 대한 의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군사력을 통한 위협’은 압도적 전력 우위를 통한 대북 억지 능력 과시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외교적 해법은 협상의 전제조건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워싱턴 대북 전문가는 “현재 미 행정부 분위기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선제 타격을 검토하거나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대북정책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또 틸러슨은 “북한 지도자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현 정책을 계속할 경우의 비용과 편익을 재평가하도록 하기 위해 ‘세컨더리 보이콧’을 비롯해 제재 수단의 사용이나 협박도 필요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북한과 거래하지 않는 중국 등 제3국의 기업도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는 틸러슨이 지난달 11일 청문회에서 “중국이 유엔 제재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미국 입장에서 중국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처(세컨더리 보이콧)를 검토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한 것보다는 수위가 낮아진 것이다. 의회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실행하라고 행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행정부 안에선 미-중 관계에 미칠 파급력과 불확실성 때문에 주저하는 분위기다.
새 대북정책을 만드는 데까지는 최소 몇개월은 더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우선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정부 내 정책개발 집중도가 크게 떨어져 있다. 게다가 새 대북정책 수립을 위해선 부처 간 조율, 부처 내 협의, 의회와의 논의, 한국·일본 등 동맹국 의견 수렴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미사일방어(MD·엠디) 코커스’ 소속 미 연방 하원의원들은 지난주 백악관에 서한을 보내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신속하게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한에 서명한 코커스 공동위원장 트렌트 프랭크스는 사드 제조사인 록히드마틴이 있는 애리조나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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