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가 올해 여름 새로 시작한다고 밝힌 쇼 ‘범고래와 조우’. 자연 다큐멘터리와 함께 범고래의 야생 행동을 보여주겠다고 시월드는 밝혔다. 시월드 제공
범고래 번식 및 쇼 중단을 선언한 미국의 해양테마파크 ‘시월드'가 새로운 형태의 쇼를 내놓는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돌고래쇼 폐지 여론에 따른 이 업계 선두주자의 대응이라 주목된다.
시월드는 ‘범고래와의 조우'를 이번 여름에 공개하고 범고래와 함께 헤엄을 치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밝혔다. 이를 위해 시월드는 5500석의 극장 형태의 범고래쇼장을 북서태평양을 콘셉트로 한 공간으로 개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대 중앙에 42미터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범고래의 생태를 보여주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주변에는 천연 암석과 나무, 인공폭포 등으로 자연적인 분위기를 강화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는 범고래의 사냥 기술, 복잡한 의사소통, 가족 간의 역할, 놀이의 중요성 등 교육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22분짜리 범고래쇼와 함께 별도의 시설에서는 범고래와 헤엄치는 5분짜리 가상현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고 시월드는 덧붙였다.
그러나 쇼를 폐지하겠다는 애초의 공언과 달리 범고래가 대형 스크린 앞 풀장에 나와 ‘가벼운 수준의 쇼'는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머릴린 한스 시월드 샌디에이고 대표는 지난 17일 와 인터뷰에서 “범고래가 조련사와 키스를 한다거나 고개를 흔드는 등 인간 행동을 흉내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야생에서 볼 수 있는 행동은 새로운 쇼에서도 지속할 것임을 내비쳤다. 한스는 “물 위로 뛰어오르는 행동(점프)이나 사냥감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꼬리를 치는 행동은 야생에서도 벌인다”며 “이런 행동은 조련사들의 요구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시월드의 범고래쇼인 ‘샤무쇼’. 이곳 시월드 올란도에서는 조련사가 숨지면서 논란을 증폭시켰다. 올란도/남종영 기자
시월드 샌디에이고가 내놓은 새 쇼 ‘범고래와의 조우’ 홍보 영상.
미국 동물단체인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은 시월드의 “사기극”이라면서 범고래를 쇼에서 은퇴시킨 뒤 야생 바다의 보호 시설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의 대변인 트레이시 레이만은 “관람객들의 환심을 사려는 마케팅 전략일 뿐 범고래를 위한 것은 아니”라며 “죽은 생선을 주면서 범고래에게 공연을 강요한다는 점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야생의 바다 보호시설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이런 프로그램이 일종의 ‘동물행동풍부화’가 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동물행동풍부화는 감금 상태의 동물이 지루하지 않도록 행동을 다양화시키는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시월드는 2010년 올란도의 여성 조련사가 범고래 ‘틸리쿰'에 공격당해 숨지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아왔다. 2013년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블랙피시>가 개봉되면서 비난 여론은 더 커졌고, 지난해 시월드는 샌디에이고, 올란도, 샌안토니오 등의 미국 내 세 지점에서 번식 및 쇼 중단을 단계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틸리쿰은 숨졌고, 시월드 샌디에이고는 가장 첫 번째로 쇼를 중단한 지점이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