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더트랜스포트 협회 멜리사 해커 회장.
생존자들 89년 ‘킨더트랜스포트협’ 꾸려
후손 멜리사 회장, 관련 다큐도 제작
‘생존자’인 엄마는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협회, 트럼프에 ‘난민에 문 열어야’ 서한
“중남미 등 어린이 난민 받아들여달라” 이 협회는 바로 1938년 12월부터 39년 9월 사이에 영국인들의 손에 의해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 체코, 폴란드 지역에서 구조된 유대 어린이들과 그 후손들이 회원인 단체다. 이 구조 작전을 일컬어 ‘킨더트랜스포트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당시 영국 정부는 17살 이하 1만 명의 유대계 어린이들에게 임시통행증을 발급했고 재원 마련을 위해 공채도 발행했다. 영국 정부의 이런 인도주의적 조처엔 나치가 그 무렵 저지른 ‘수정의 밤’ 사건(38년 11월9일)이 영향을 미쳤다. 나치 ‘폭도’들은 독일 전역에서 유대계 상점 7천 곳 이상을 약탈했고 유대인 3만명을 강제수용소로 끌고갔다. 독일 유대인들이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들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들은 2차 대전(39년 9월1일 개전) 이전엔 비자만 있으면 독일을 떠날 수 있었다. 돈은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비자 발급에 고개를 저었다. 1939년에 당시 미국 정부가 난민에 취한 태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발생했다. 유대인 935명을 태우고 독일 함부르크항을 떠난 세인트루이스호는 쿠바와 미국 해역을 떠돌다 결국 유럽으로 돌아갔다. 미국 정부가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이 유대인 가운데 254명이 결국 홀로코스트로 죽었다. 4년 전부터 이 단체 회장을 맡고 있는 멜리사 해커는 생존자의 후손이다. 그의 엄마 루스 몰리(1925~91)는 39년 킨더트랜스포트 프로그램을 통해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국으로 탈출했다. 몰리는 그뒤 뉴욕으로 건너와 의상 디자이너로 성공했다. <택시 드라이버> <애니홀> <투씨> 등 지금은 고전이 된 미국 영화에서 의상을 담당했다. <투씨>의 주인공 더스틴 허프만을 여자로 변신시킨 옷이 바로 몰리의 작품이다. 63년엔 <더 미러클 워커>란 작품으로 아카데미 의상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딸 해커 역시 영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현재 뉴욕대 영화스쿨 교수로 일하고 있는 해커는 98년 킨더트랜스포트 프로그램을 주제로 다큐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편지가 공개된 뒤 언론 인터뷰에서 “킨더트랜스포트 프로그램 수혜자 가운데 200여명 이상이 지금도 살아있는데, 이들 모두가 미국에 살고 있다. 편지엔 생존자뿐 아니라 그 후손들도 동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그의 절절한 호소는 이어졌다. “생존자 가운데 2명이 노벨상을 받았고 다른 생존자들도 재계와 영화, 학계 등에서 성공적인 삶을 개척하며 정착한 나라에 기여했다. 중미와 남미 등에서 미국 입국을 희망하는 난민 어린이들이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을 절대로 되돌려 보내선 안된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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