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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브렉시트·트럼프 당선’ 가져온 분노의 뿌리는?

등록 2017-02-21 20:59수정 2017-02-21 22:22

인도 출신 저술가 판카지 미슈라
‘분노의 시대-현재의 역사’ 눈길
현재의 역사는 18세기 역사 연장
철학자 볼테르와 루소 대비 눈길
볼테르는 위선적, 루소는 선지자


인도 출신 저술가 판카지 미슈라.
인도 출신 저술가 판카지 미슈라.

인도 출신 저술가 판카지 미슈라(48)가 최근 영문으로 펴낸 저서 <분노의 시대-현재의 역사>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등 서구 여러 매체들이 잇달아 장문의 리뷰를 실었다.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잔시에서 태어난 미슈라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 대신 산을 택했다. 좋아하는 책을 읽기 위해서다. 책 짐을 꾸려 히말라야 산맥에 터한 소도시 마쇼브라로 들어갔다. 1992년부터 5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티브이도 전화도 없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는 당시 하루에 평균 책 한 권을 읽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책을 읽은 뒤 서평을 써 인도의 여러 매체에 보냈고, 그 고료로 산골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의 첫 책인 소설 <더 로맨틱스>(2000)를 이 시절에 썼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보낸 글이 계기가 되어 이 매체의 저명한 편집자 바버라 엡스타인의 눈에 뛰게 되었다. 이후 그는 여행서와 논픽션, 회고록 등 다양한 책을 펴내며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된 <제국의 폐허로부터>(2012)는 량치차오, 타고르 등 아시아의 문제적 인물을 통해 이 지역의 근대를 그렸는데, 이 책을 두고 소설가 오르한 파묵은 “오늘날 분노하는 아시아인의 할아버지 세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라고 평했다. 인도 출신인 그가 쓴 글은 동서간 문화의 만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해박한 지식에 바탕하면서도 글이 딱딱하지 않아 일반 독자들과도 무리없이 만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슈라는 신간에서 지구촌 구성원들의 증오와 분노의 기원을 추적한다. 이슬람 급진세력의 폭탄테러나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공통적으로 나오는 애기가 바로 ‘분노’다. 도대체 그 뿌리는 무엇인가. 저자의 시선이 닿은 곳은 18세기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분노는 18세기 이후 멈추지 않은 역사의 일부이다. 세상이 근대로 향할 때, 자유와 안정, 번영이라는 근대의 약속을 누릴 수 없었던 이들이 점차 선동에 휘말리는 모습을 저자는 보여준다. 근대라는 신세계의 입장권을 끊지 못하거나 늦게 도착한 이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소름끼치게 유사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상상으로 만든 적에 대한 엄청난 증오, 있지도 않았던 ‘황금시대’의 재창조, 스펙타클한 폭력을 통해 스스로 무장하기’ 등이다. 19세기 독일의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이나 이탈리아의 호전적 쇼비니스트(맹목적 애국주의자), 종교적 열정에 불타는 러시아의 혁명주의자들이 이런 예에 속한다.

미슈라는 18세기 철학자 볼테르(1694~1778)와 장 자크 루소(1712~1778)를 대비시킨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위선적 지식인에 불과하다. 관용을 주장하면서도 러시아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와는 친하게 지냈다. 투기와 시계 생산으로 재산을 불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리뷰에서 저자가 볼테르를 스위스 다보스에 모이는 글로벌 기업인들의 ‘영적인 조상’으로 그리고 있다고 했다.

반면 루소는 지금 드러나고 있는 문제를 앞서 예견한 통찰력 있는 지식인이다. 루소는 ‘시장 사회’가 개인주의의 닻을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 사회에서 인간들은 부와 지위에서 앞서 나가려 경쟁할 것이고 이는 엄청난 잔혹함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루소는 봤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위안을 제공하는 정서적 버퍼가 종교와 가족인데, 근대화된 세상에서 이게 약화됐다. 때문에 개인들은 자존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타인들의 의견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게 불안전과 질투, 자기증오 등이 뒤섞인 끔찍한 사건 등으로 연결됐다. 미슈라의 논의에서 이것이 바로 여전히 세계 문제의 핵심이다.’(뉴욕타임스 리뷰 가운데)

<뉴욕타임스> 등은 미슈라가 제기한 논점의 한계도 지적했다. 예컨대, 루소가 스파르타를 이상향으로 삼을만큼 군사주의를 선호했고, 외국인이나 여성혐오 성향도 강했는데, 저자가 이런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의 논의가 주로 정서나 이상의 영역에 머물러 경제나 정치의 실제 현실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저자가 지금의 ‘리버럴 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지금에 와서 역겨운 루소를 소환하는 이유”라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가디언> 리뷰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경고로 저자는 책을 끝내고 있다. 미슈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맞설 수 있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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