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1일∼2018년 9월30일) 국방비를 약 540억달러(약 61조원) 증액하기로 했다고 백악관 예산담당 관리들이 27일 밝혔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주지사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본격적인 힘 겨루기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비를 증액하고 연금과 의료복지 비용을 온존시키는 반면, 다른 사회 관련 예산을 대폭 줄인 예산안을 제시하자,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비를 현재보다 200억달러 증액하는 한편 비국방 사회 분야 및 해외 원조 등의 예산을 540억달러 삭감하는 2018년 회계연도(2017년 10월1일~2018년 9월30일) 연방정부 예산안을 제출한다고 미국 언론들이 27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28일 저녁 이런 예산안을 반영하는 상·하원 합동 회의 연설을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안한 국방 예산 총액은 총 6030억달러이다. 이는 현 수준보다는 2%인 200억달러, 향후 10년간의 국방비 자동예산삭감(시퀘스터) 조처에 따른 내년 국방비 상한보다는 10%인 540억달러가 늘어난 것이다. 이는 역대로 가장 큰 국방비 증액 규모 중 하나이다.
이번 예산에서 국방비 및 법집행 강화에 향후 18개월 동안 약 1000억달러가 증액됐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늘어나는 국방비 540억달러만큼 교육 프로그램, 빈곤퇴치, 과학, 보건 등 국내 사회 분야의 임의재량 지출 예산 및 해외원조 예산는 삭감됐다. 그러나 트럼프는 공공은퇴연금 프로그램인 소셜시큐리티와 취약계층의 의료보험복지인 메디케어(노년층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을 삭감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예산안에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 모두는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공연금 및 취약계층 의료복지 비용을 온존시킨 것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주류와의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분석했다.
‘예산 보수주의 진영’인 라이언 의장 등 공화당 주류는 균형예산 및 작은정부 실현을 위해서는 연방정부 지출의 거의 60%를 차지하는 소셜시큐리티와 의료복지 비용을 삭감하는 것이 필수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을 삭감하지 않고, 강화하겠다고 밝혀왔다.
또 공화당 내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국방 매파들은 트럼프의 국방비 증액이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에 가장 비판적 의원 중 하나인 매케인 의원은 국방비가 6400억달러에 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척 슈머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27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국방비 대폭 증액을 뼈대로 하는 트럼프 정부의 첫 예산안에 대해 “중산층을 희생해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민주당에서는 국방비 증액으로 희생되는 각종 사회 분야 예산 삭감을 반대하고 있다.
하원 세출위원회의 니타 로위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다수의 잘못된 우선 순위를 확실히 드러내겠다”며 “우리는 고되게 일하는 미국 가정과 지역사회들에 필수적인 서비스와 투자를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이다”고 밝혔다.
공화당 주류와 민주당의 반대로 트럼프 예산안의 의회 통과는 진통을 겪을 것이 분명하다.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특히 티파티 진영 등 예산 보수주의자들이 포진하고 있어, 사회복지 예산 삭감을 통한 균형예산이 아니면 통과될 가능성이 적고, 상원의 공화당 의원들에 의해서도 거부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예산안은 상원에서 100명의 의원 중 60명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은 52명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예산안이 통과되려면 공화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협조가 있어야 한다. 이는 결국 소셜시큐리티 및 의료복지를 둘러싼 타협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층인 백인 중하류층들의 이해를 대변해 소셜시큐리티를 온존시킬지, 아니면 의회에서 공화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를 포기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는 트럼프주의의 추진 동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